
2024년 10월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옛 성병관리소에서 동두천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주최로 철거에 반대하는 문화제가 열려 참가자들이 건물 들머리에 ‘평화의꽃’을 꽂고 있다. ‘유령 연구’의 지은이 그레이스 조는 공대위의 천막 농성장에 두 번 방문했다고 한국어판 서문에 썼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하루에 단 1분이라도 좋으니, 피해자를 떠올려주세요.” 성폭력 피해 당사자 니노미야 사오리가 가해자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거듭 던지는 말이다. 이 요청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아득한 간극을 직면하게 한다. 왜 가해 기억은 쉽게 망각되고 피해 기억은 줄곧 지속될까?
성폭력 피해로 생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평균 지속 기간은 110개월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가해자는 너무나도 간단히 자신의 가해 행위를 잊는다. 임상 현장에서는 이를 ‘가해자 기억의 망각’이라 부른다. 가해자는 대개 다수의 가해 행위를 반복하기에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이 희미하다. 피해의 실상도, 피해자에게 남겨진 ‘그 뒤’의 삶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피해 경험은 인생의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성폭력 피해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산산조각 난 트라우마 경험을 쉽게 잊기는 어렵다. 더구나 피해자에게는 트라우마 체험에 대한 기억을 지닌 채 그 뒤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더 잔혹하고 괴로운 사실일지 모른다. 성폭력 피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존자’라 부르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동안 어렴풋이 생각만 하던 이 문제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왕복 서신과 대면 프로그램을 기록한 책 ‘피해자가 가해자에게’(조지혜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26년)를 편집자 독서 모임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대화는 가능할까? 아니, 애초에 왜 그런 불가능한 대화를 시도할까?

6·25 전쟁 당시 한 어린이가 부상을 당한 채 미군의 부축을 받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관리청(NARA) 소장. ‘유령 연구’의 원서 표지에 쓰인 사진. 동녘 제공
사회복지사 사이토 아키요시는 3천여 명의 성범죄자를 만난 가해자 임상 전문가다. 그는 회복적 사법의 기치를 내걸고 성폭력 가해자들의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그러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 니노미야 사오리가 이 여정에 동참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는 ‘회복적 대화’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람’과 ‘사람’으로서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자리다.
하지만 이 낯선 대화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결코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가해 기억을 아예 망각하는 가해자”와 “언제까지나 피해 기억이 되살아나는 피해자” 사이에는 압도적인 비대칭성이 있다.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는 플래시백처럼 갑작스럽게, 반복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틈입하는 실존적 위협이다.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남긴 상처가 그토록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회복적 대화는 가해자가 ‘피해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에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마주하고 책임지기 위해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기억하기’다. 피해자의 존재를 의식의 표면으로 계속해서 끌어올리는 행위 자체가 책임의 시작이다. 니노미야 사오리가 대화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하루에 단 1분이라도 좋으니 피해자를 떠올려주세요”라고 거듭 당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은 ‘떠올린다’는 행위 자체를 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회복의 여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대화의 목적이 가해자를 단순히 ‘용서’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가해자들이 용서를 구하는 행위만으로 당연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오만이자 폭력이 될 뿐이다. 저자들은 사죄가 단지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퍼포먼스로 전락하는 것을 단호히 경계한다. 가해자에게는 긴 시간에 걸쳐 회복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 곧 성폭력이 필요했던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회복적 대화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용서’를 베푸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범죄와 트라우마라는 객관적 사실, 그리고 그 피해가 드리운 무거운 중력에서 조금씩 풀려나 새로운 삶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이 대화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분노와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고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렇게 작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회복적 대화에는 전제가 있다.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꺼낼 수 있어야 하고, 대화에 나설 가해자가 특정돼야 하며,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마주 앉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대화’조차 불가능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고 심지어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할 때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의 ‘유령 연구’(성원 옮김, 동녘 펴냄, 2025년)는 바로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양공주’의 딸이다. 양공주는 미군을 상대하던 매춘 여성을 일컫는 멸칭으로, 한인 디아스포라에게는 발화할 수 없는 ‘유령’ 같은 단어다. 미군을 상대로 성노동을 했던 한국 여성은 100만여 명,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은 10만여 명에 이르지만,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국가는 과거를 철저히 감추려 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의 토양 속에서 자라난 저자는 말해지지 않은 비밀은 사라지는 대신 다음 세대에 불안과 공백의 형태로 전이된다고 증언한다. 감춰진 트라우마가 또 다른 트라우마를 생성하는 셈이다. 저자는 이를 ‘유령’이라 부른다. 유령은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채 곁을 배회하며 타인 안에 매장된 망자의 존재로 끊임없이 출몰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가 대화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지닌 기억의 비대칭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한다면, ‘유령 연구’는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건너 증폭되는지를 추적한다. 이 추적은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말해질 수 없었던 것을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낯선 글쓰기 형식을 택한다. 이론과 개인의 고백이 뒤섞이고, 학술적 분석과 픽션의 상상력이 경계를 넘나들며, 사적인 꿈과 국제정치적 사실이 한 단락 안에 공존한다. 처음에는 당혹스럽다. 그러나 읽다보면 이 낯섦이 저자가 의도하는 바임을 깨닫게 된다. 오직 그 불완전한 접합만이 말해질 수 없었던 진실의 윤곽을 간신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이것은 트라우마에 관한 기획이지만 동시에 텍스트 자체에 트라우마를 입히려는 글쓰기 실험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유령 연구’는 학술서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연에 가깝다.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논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 위에서 트라우마를 직접 상연하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독자는 매끈하게 정리된 단일한 서사를 읽는 대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겹치는 연극 장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글쓰기의 효과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독자를 이해시키기보다 불편하게 한다.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는 대신 그 거리 자체를 뒤흔든다. 차가운 지식으로 사건을 정리하는 대신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무언가를 아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적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왜 이런 글쓰기가 필요할까? 깔끔하게 정리된 서사는 우리를 안심시키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끝내버리기 쉽다. 그러나 유령은 그런 서사 바깥을 배회한다.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가. 사실이나 이야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정보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 아닐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이야기다. 말해진 것뿐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것을,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겹친 목소리를, 설명이 아니라 상연을 통해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이다. 정보가 아닌 감정과 정동의 수준에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말이다. 이때 글쓰기는 우리를 안전한 거리에서 끄집어내어 타인의 고통에 우리 일상이 어떻게 연루됐는지를 목격하게 한다.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온다. 왜 가해 기억은 쉽게 망각되고 피해 기억은 끈질기게 지속되는가.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피해 기억은 선형적인 시간을 따르지 않고 불쑥불쑥 현재를 잠식한다. 그레이스 조의 말처럼 “트라우마의 시간성은 절대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피해 기억은 그것이 말해질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조건과도 맞물려 있다. 가해 기억에는 망각이 허용되고 피해 기억에는 발화가 금지될 때 트라우마의 고통은 유령처럼 이어지게 된다. 기억하기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조건이 기억하기와 말하기를 불가능하게 하는지 함께 물어야 하는 이유다.
가해자의 망각과 피해자의 기억, 그리고 그 사이를 배회하는 유령들과 그에 대한 증언들을 지켜보는 일은 타인의 비극을 관조하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공동의 책임에 연루되는 과정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우리가 이 대화와 이 유령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자신 역시 그 침묵을 지탱해온 사회적 조건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직접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집합적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 대리 책임, 즉 우리가 완전히 무고한 것들의 결과들을 스스로 떠안는 일은 우리가 홀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동료 인간들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대가”다.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책임과 판단’,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필로소픽 펴냄, 2019년

‘유령 연구’,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동녘 펴냄, 2025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이토 아키요시·니노미야 사오리 지음, 조지혜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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