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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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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에서 눈 돌리니,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저소득층 부모가 학교에 남긴 돌봄 과제… 꿈을 요구하기에 앞서 현재를 살도록 도와줘야
등록 2026-08-19 11:22 수정 2026-08-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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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인문계 고교 등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대개 서울 등 대도시로 떠난다. 반면 공업고등학교 아이들은 대개 지역에 남는다. 지역을 지탱하는 이웃으로 살아간다. 셜록 제공

특목고, 인문계 고교 등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대개 서울 등 대도시로 떠난다. 반면 공업고등학교 아이들은 대개 지역에 남는다. 지역을 지탱하는 이웃으로 살아간다. 셜록 제공


“내가 만난 20년차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의 중요한 기능은 공부가 아니라 밥이라고 말했다.”

사회학자 조은주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생각의힘 펴냄, 2026년)을 읽으며 밑줄 친 문장이다. 어쩌면 이 말은 오늘날 학교가 처한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성적과 입시경쟁이라는 익숙한 시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겪는 더 근본적인 곤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학교는 오랫동안 ‘정상가족’을 전제로 성립해왔다. 아침에 깨워주고, 밥을 먹이고, 옷을 챙겨 입히고, 밤이 되면 집에 돌아왔는지 확인해주는 가족. 공부하라 다그치고, 좋은 대학에 가라고 성화를 부리며, 적어도 겉으론 화목하게 유지되는 가족. 그러나 그런 가족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안정적인 돌봄과 교육 지원을 하는 중산층 가족을 암묵적인 표준으로 삼아온 학교에 이제 최소한의 돌봄밖에 받지 못하거나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아이가 점점 더 많이 들어오고 있다.

흔히 요즘 학교의 어려움이라고 하면 학부모 민원을 먼저 떠올리지만, 다른 한편에는 부모와 연락조차 제대로 닿지 않아 교사가 아이의 생활을 직접 챙겨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사들은 고소득층 학부모의 민원에 응대하면서도 저소득층 학생의 부모가 남긴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문제는 학교가 가족에게 맡겨뒀던 돌봄이 흔들리는데도, 학생에게 요구하는 삶의 시간표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서사 없는 꿈

 

내게는 이상하리만큼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진학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던 학교에서 보낸 3년은 친구 관계나 동아리 활동보다 대학이라는 미래를 준비한 시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학교생활의 제1규칙이었다. 지금도 학교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가족의 돌봄은 취약해지고 학교가 대신 감당해야 할 몫은 커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가보다 내일 무엇이 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꿈’을 가져라, 진로를 정하라, 미래를 설계하라. 그러나 오늘 하루를 견디는 일부터 어려운 아이들에게 미래를 계획하라는 ‘꿈 담론’의 요구는 과연 얼마나 현실적일까.

사회학자 조은주는 ‘세계에 속한다는 것’에서 20년간 인터뷰와 현장연구에서 만난 십 대와 이십 대의 학교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2016년 중학교에 입학해서 202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는 간호조무사, 축구선수, 바이올리니스트 같은 “꿈이 있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에게조차 정작 그 꿈을 향해 살아갈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 무엇보다 서사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꿈이 무엇이든 그 꿈을 갖게 된 계기에 있어 아무 서사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다는 서사도 없었다.”

서사가 없다는 것은 아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미래를 위해 꿈에 전념하고 몰두하는 태도에 실은 매우 계급적인 속성이 내재됐음을 지적한다. 입시와 진로를 위해 온갖 지원을 하는 가족관계에서 ‘꿈’을 갖고 노력하는 삶과, 학교에서 ‘밥’을 챙겨 먹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정상성과 능력주의에 소외되는 아이들

 

조은주는 그러한 간극의 원인을 학교가 전제해온 ‘정상가족’의 조건과 능력주의적인 교육 질서에서 찾는다. 그렇기에 가족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입시경쟁에 참여할 자원도 부족한 수많은 학생은 학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속해 있지 않다. 학교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고, 아이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다. 그 점에서 아이들에게 학교란 “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과 다름없다.

사람은 꿈을 가짐으로써 어떤 세계에 속하고 싶은지를 그려본다. 문제는 모든 아이가 학교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런 꿈을 갖기 어렵다는 것은 자신을 학교라는 세계, 나아가 사회라는 세계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조은주가 만난 학생들의 불안은 “게임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는 존재가 경기장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느끼는 당혹감”에 가까웠다. 학교에 출석하기만 할 뿐 어떤 의미도 얻지 못하는 상황. 이른바 ‘학교 실패’다. 학교는 학생을 교육이라는 장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은주는 자신의 사회학적 분석과 비판이 학술적 연구로만 머물기보다 하나의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나와 무관한 ‘그들’이 아니라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중 하나’로 바라보게 된다. 통계만으로는 쉽게 사라지고 마는 아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가까이에서 따라갈 때, 타인에 대한 공감과 구조적 부정의의 느낌이 아이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야기가 학교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우리와 연관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해도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그들은 우리가 공감하고 수용해야 할 세계의 신참자일 뿐일까, 아니면 그들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다른 관계를 만들고, 무엇이 가치 있는지 판단하며, 때로는 기존 질서와는 다른 세계를 조금이라도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애들이 뭘 좋아할까?”라는 물음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덧붙여보고 싶다. 지역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지한구의 이야기다. ‘공고 선생, 지한구’(후마니타스 펴냄, 2025년)에서 그는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 이 시대 공고와 공고생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반고와 달리 공고 교사의 주요 업무는 진학이 아닌 취업이다. 공고생들에게 서른 살까지 부모 집에서 지내며 취업을 준비하는 ‘캥거루족’의 삶은 먼 이야기다. 열아홉이면 대부분 일터로 나가야 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학교에 다니면서 밤새워 일하는 아이도 있다.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한 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꿈이요? 학교에서 깨어 있으면 일하다 죽거나 굶어 죽을 거 같은데, 제가 어떻게 꿈을 꿉니까?”

그럼에도 지한구는 학교와 사회에서 ‘꼴등’ 취급을 받는 공고생에게도 저마다의 꿈과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2017년 지한구가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은 학교 문집에 두 가지 장래희망을 적어냈다. 하나는 “기기를 수리하고 조립하는 엔지니어”였다. 이유는 “내 적성이자 내가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이어서”. 다른 하나는 “화물을 운반·배송하는 트레일러 운전기사”였다. 이유는 더 간단했다. “멋있어 보이고, 해보고 싶어서.” 그 학생이 졸업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지한구는 길에서 트럭을 몰고 있는 제자와 우연히 마주친다. 어쨌거나 “녀석은 꿈을 이룬 셈이다”.

이 꿈은 앞에서 살펴본 ‘꿈 담론’과는 어딘가 달라 보인다. 그것은 먼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유예하는 꿈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어서” “해보고 싶어서”라는 지금의 마음에서 출발해 자신을 세계의 어떤 일과 연결해보는 자그마한 꿈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이 또한 분명 꿈이다.

‘공고 선생, 지한구’에는 그런 장면이 여럿 나온다. “애들이 뭘 좋아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헬스부도 그중 하나다. 헬스부에서는 공부와 성적 대신 몸을 만들고, 함께 목표를 이루는 역량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 “공고 애들은 안 돼”라는 말을 듣던 학생들이 보디빌딩 무대에 올라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실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능력이 이곳에선 중요한 것이 되고, 그 능력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관계도 함께 생겨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땀 흘리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교육의 순서를 뒤집자

 

세계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일만은 아닐지 모른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학교 안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은 다른 능력을 발견하고,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 세계에 속한다는 것은 주어진 인정의 질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얻는 것뿐 아니라, 그 질서 자체를 조금씩 바꾸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졸업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졸업한 공고생들은 미용사가 되고, 식당 사장이 되고, 배달노동자와 수리기사가 되어 동네에 다시 나타난다. 지한구는 공고 교사들에게는 공통의 징크스가 있다고 말한다. “외식이나 밖에서 술을 마시면 꼭 재학생이나 졸업생을 한 명 이상 만난다”는 징크스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그리고 오래도록 이웃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다시 첫 문장의 ‘밥’으로 돌아가보자. 오늘 밥을 먹고, 오늘 잠을 자고, 오늘 학교에 와서 친구를 만나고,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어야 꿈도 미래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돌봄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순서가 뒤집힌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의무 이전에 현재를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한구가 말하듯 교육은 아이들이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학교 안팎에서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마련한 자리에 얌전히 들어앉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곳에서 다른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역량을 찾아내며,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을 조금씩 벗어나기도 한다. 이 세계의 신참자였던 아이들은 그렇게 우리의 이웃이자 동료가 된다. 교육이란 이웃을 키우는 일이다.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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