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의 신경주역(현재 경주역) 전경. 역사는 외딴섬처럼 기존 도심 밖 허허벌판에 있다. 국가철도공단 제공
지금은 경주역으로 불리는 신경주역은 2010년 영업을 시작했다. 경북 경주가 고향이고 수도권에 직장을 둔 나는 그 전까지 본가에 갈 때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경주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대략 네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케이티엑스(KTX)를 타니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했다. 기적적인 속도였다.
문제는 도착한 곳이 경주 시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경주역은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개통 당시 주변에는 산과 논밭, 축사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용객에겐 불편이 컸다. 늦은 밤에 도착하면 시내버스를 타기가 마땅치 않았고 택시비도 너무 비싸서 부모님께 차로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내가 두 시간을 아끼자고 부모님은 왕복 한 시간 가까이 승용차를 몰아야 했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더 비싼 열차를 탈 이유가 있을까. 한동안은 예전처럼 고속버스를 더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두 시간의 차이는 점점 더 크게 느껴졌고, 열차 요금도 오랫동안 동결되면서 체감상 부담이 줄었다. 어느 순간부터 KTX를 당연한 듯 이용하게 되었다. 그사이 도심에 있던 옛 경주역은 폐역이 되었고 신경주역이 그 이름을 이어받았다. 새로운 경주역 주변에 아파트 단지도 하나둘 들어섰지만 여전히 경주 시내와는 동떨어진 역으로 남아 있다. 애초에 왜 이런 불편한 역이 만들어졌을까?

‘외톨이 역을 떠나며’, 전현우 지음, 민음사 펴냄, 2026년
도시의 생활공간과 분리된 역은 경주에만 있지 않다. 포항에도, 군산에도, 진주에도, 원주에도, 남원에도, 안동에도 있다. 교통철학자 전현우는 이런 역을 ‘외톨이 역’이라 부른다. “역이 도심과 떨어져서 과거의 역과도 시민들이 거는 기대와도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고 마는” 역이다. 본래 역이란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자기 발로 움직여 도시 안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만남의 공간이다. 반대로 “만남의 공간이 되지 못할 때 역은 가능한 한 빨리 속도를 내서 빠져나가야 하는 외톨이 섬”이 된다. KTX를 타고 두 시간 만에 경주에 도착했지만, 정작 역에 도착한 순간 경주 시내로 가기 위해 자동차가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기차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개인 교통이 대거 동원되는 역설이자 비효율이 아닐 수 없다.
전현우는 ‘외톨이 역을 떠나며’(민음사 펴냄, 2026년)에서 외톨이 역이 생겨난 이유와 문제를 분석한다. 그는 이를 역 배치의 우연한 실패로 보지 않는다. “외톨이 역에는 지방의 소멸, 에너지 전환, 기후위기 문제가 얽혀 있다.” 외톨이 역의 형성과 그 뒤로 나타난 결과를 따라가다보면 왜 오래된 도심이 쇠락했는지, 지방 도시들이 어째서 주변 도시와 이어지지 못하는지, 왜 자동차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신도시가 계속 만들어지는지가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외톨이 역이 낡은 행정이나 교통 시스템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존하며 시민이 참여하는 등 진보적 가치들 역시 역을 도심 밖으로 밀어내는 데 일조했다. 왜일까? 여러 도시를 손잡게 하는 철도망 구조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심 내 철도는 소음과 단절을 만드는 시설로만 여겨졌고, 문화유산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도시 밖으로 물러나야 할 대상으로 취급됐다.
전현우는 “발전 대 보존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현실”을 보라고 말한다. 도시를 이루는 여러 요소를 따로따로 보고, 옆 도시와 우리 도시를 별개로 보면 철도는 힘을 잃는다. 철도는 정해진 길로만 다니기에 자동차보다 뻣뻣한 교통수단이다. 대신 한번 제대로 연결되면 많은 사람과 도시를 적은 에너지로 이어준다. 그렇기에 철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도시 전체, 나아가 이동 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만 한다. 각각의 시스템이 자기완결적인 망을 지향하면 대중교통은 필패다”.
지역의 교통계획은 대체로 자기 행정구역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다보니 도시와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광역 교통망의 문제는 뒷전으로 여겨졌다. 전현우는 “철도가 사라지는 이유는 결국 이렇게 서로가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쓴다. 사람만 외톨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역도, 도시도, 지역도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균형발전을 위해 세운 세종시 같은 도시조차 주변 도시와 철도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래된 소도시에서는 기존에 있던 철도조차 폐쇄하는 실정이다. 지역들을 각자의 경계 안에만 가둬온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외톨이 역을 떠나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제안은 지역을 더 큰 규모에서 다시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 도시가 다른 도시의 시민들에게 확장된 걷기 공간을 이용할 이유가 될 수 있는 초광역 규모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의 제안을 요약하면, 수도권 바깥의 충청·전라·경상 ‘삼남’(三南)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상상하고 광역 철도망을 다시 짜자는 이야기다. 현재 고속철도망의 연결 수준은 “경부선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나무, 강릉선과 중앙선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나무가 사실상 모든 것”이다. 호남과 영남 사이에는 철도를 통한 직접 연계가 거의 없으며, 호남과 영남 내부에서도 광역망 철도 연계는 부실하다. 광주와 부산 사이에는 아직도 직통 KTX가 없다. 서로 이웃한 지역들조차 연결하지 못한 채 서울 중심으로 짜인 고속철도망의 구조적 한계다.
지역 인구가 줄어들수록 지역 간 연결은 더욱 중요해진다. 사람이 적으니 버스를 줄이고, 이용객이 적으니 열차를 줄이면 자동차 없는 사람은 지역에서 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사람은 더 빠져나가고 대중교통은 더욱 축소된다. 지역의 쇠퇴와 이동망의 쇠퇴가 서로를 가속하는 악순환이다. 주변 도시들과의 철도 연결조차 없는 외톨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지역의 “약자들은 뭉칠 계기를 찾지 못할 것”이고, “흩어지면 수도권의 압도적인 힘 앞에 더욱 종속”될 수밖에 없다. 삼남 전체의 연결망을 새로 그려야 하는 이유다.
지역 소멸의 반대말은 지역 간 연결이다. 지역을 살린다면서 서울과만 더 빠르게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부산과 광주, 경주와 전주처럼 비수도권 도시들이 서로 쉽게 오갈 수 있어야 수도권에 의존하지 않는 생활권이 만들어질 수 있다. 광주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같은 세계적 규모의 문화예술 기관이 있지만, 경상도 사람에게는 좋은 전시가 열려도 쉬이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다.
비수도권 도시들이 촘촘한 철도망으로 연결돼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지역의 전시를 언제든 보러 가고, 학교와 일터를 오가는 생활 반경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한 지역에 더 많은 것을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대신 지역 고유의 특색을 공유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지역의 특색을 지키는 일과 지역을 연결하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외톨이 역을 떠나며’에서 제시하는 급진적인 대안은 화려한 신기술이 아니라 ‘규칙 시각표’다. 매시간 같은 시각에 열차가 오고, 다른 노선과 자연스럽게 환승할 수 있도록 만든 예측 가능한 시각표다. 왜 이런 ‘규칙’이 필요할까? 이빨 빠진 모양으로 들쭉날쭉한 배차 간격 때문에 열차를 타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열차 시간을 한 달 전부터 검색하지 않아도 되고, 자동차가 없어도 옆 도시로 쉽게 갈 수 있다면 지역은 고립된 점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사는 그물망의 한 부분이 된다. 지역 소멸에 맞서는 일은 사람을 한 지역에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들 사이를 오가는 교통 연결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임경택 옮김, 사월의책 펴냄, 2016년
기후위기는 이 모든 문제를 다급한 일로 만든다. 승용차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교통 시스템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전현우가 예측하듯 “2050년대생은 자가용을 더더욱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비행기 여행은 분명 지금보다 비쌀 것이며, 기름값은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고 전깃값도 아마 그럴 것이다.”
승용차의 생애 가동률은 5% 남짓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생애를 주차장에서 보내는 기계를 위해 막대한 면적의 도로와 주차장을 마련하고 있다. 자동차가 많아질수록 길은 막히고 교통 시스템의 비효율은 커진다. 일본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는 이런 문제를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고 불렀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탄소배출이라는 생태적 비용까지 더해진다.
반면 철도는 승용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월등히 높다. 승용차 통행량을 철도로 10% 흡수하면 에너지소비량은 9%, 탄소배출량은 8% 줄어든다는 것이 전현우의 계산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자동차보다 철도를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이동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상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주 도심을 지나던 기존 철도 노선은 2021년 폐선됐다. 신경주역이 경주역으로 개명된 이유다. 남겨진 시내 폐철도 부지에 들어선 것은 도시숲이다. 옛 철길을 걷어낸 자리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숲이 조성되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은 도심에서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잃어버렸다. 전현우가 지적하듯 이것은 “도시 전체의 이동 시스템에는 눈을 감고 있는 현실을 가리기 위해 나무가 동원된 ‘그린워싱’”에 가깝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이동 방식을 고수하거나 아예 이동을 그만두는 대신 이동 시스템 자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공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것보다 자동차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교통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기후위기 대응이다. 어떤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이 질문은 이제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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