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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너 없이 향기로울 수 있을까… 계수나무에서 단내 나는 이유

이파리 물들어 시들수록 단내 진해지는 계수나무… 생체 기능 쇠퇴하며 ‘말톨’ 성분 축적한 덕
등록 2026-10-08 21:02수정 2026-10-15 14:12
단풍이 든 계수나무.

단풍이 든 계수나무.


 

단풍 향기가 이렇게 좋아도 되나. 계수나무 곁을 지나며 중얼댄다. 솜사탕이나 캐러멜에서 출발한 것 같은 달짝지근한 냄새가 솔솔 풍겨서다. 시월과 함께 찾아오는 계수나무의 단풍은 살구색으로 시작해 노랗거나 붉게 변화하면서 물든다. 우아하게 물드는 이파리의 색도 색이지만 계수나무는 무엇보다 단내가 일품이다. 물든 잎이 팔랑팔랑 바람에 나부낄 때와 갓 떨어진 낙엽을 주워 흔들 때 향기는 가장 짙게 코를 자극한다.

계수나무는 중국과 일본이 원산인 계수나무과 식물이다. 국내에는 근대(일제강점기 전후 추정)에 도입돼 널리 심어 기르기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의 야생에서는 다소 높은 산정의 숲에 산다. 높이는 최대 30m, 둘레 6m 이상으로 아주 크게 자라고 오래 사는 편이다. 나무 모양 자체가 단정하고 기품이 있다. 잎은 부드럽고 토실한 하트 모양이라 귀여운 느낌이 든다. 거기에다 잎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 톱니가 있는 점도 괜스레 정감이 간다. 암꽃만 피는 암그루와 수꽃만 피는 수그루가 따로인 자웅이주이다.

 

동요 ‘반달’ 속에서는 상상의 나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하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앞서 말한 계수나무를 가리키는 건 아니다. 달에 있다는 상상의 나무를 상징적이고 문학적인 존재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주권을 잃은 우리 민족의 시련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나무. 고전 문헌에 등장하는 계수(桂樹)도 비슷하게 쓰인 경우가 있다. 은자가 머무는 곳에 자라는 식물로 은자나 은거를 상징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 문인 이상정(1711~1781)은 ‘계수’가 자라는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이런 시를 남겼다.

 

숲속에 계수는 떨기 그윽하니 森森䕺桂幽

이곳에서 나는 늙고 싶다네 此間吾欲老

 

옛 문헌에 등장하는 식물명을 연구한 학자 공광성은 이때의 계수는 은거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됐지 특정한 식물을 이른다 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 단 조선 선비들이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글에 등장하는 계수나무 중에는 생물학적인 ‘잎갈나무’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고 분명히 짚는다(‘고전식물명 ‘계수桂樹’에 관한 고찰’, ‘국학연구’ 제33집, 2017). 그 밖의 옛 문헌에서는 향기가 있는 계피나무(Cinnamomum)류나 목서(Osmanthus)류 등을 가리켜 계수나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좀 헷갈릴 수 있다.

초등학생 조카에게 알려준 이 무렵 단풍이 드는 여러 갈잎나무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계수나무다. 땅에 떨어진 하트 모양의 노란 잎을 주워 들고 킁킁 향기를 맡더니 솜사탕 냄새가 난다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물든 계수나무 잎사귀.

물든 계수나무 잎사귀.


 

떨어지기 직전부터 떨어진 직후까지 절정

 

그 특유의 향은 봄에 나온 새잎이 늙으면서 생긴다. 계수나무 체내의 말톨이라는 성분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말톨은 탄소와 수소, 산소 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아주 작은 분자다. 우리 인간의 몸을 이루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같은 유기물도 대부분 탄소와 수소, 산소 원자를 기본으로 한다. 나무도 사람도 결국 같은 원소로 이뤄졌다. 그 원자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별개의 생명체가 된다.

말톨이 계수나무의 새잎에도 분명 있지만 봄에는 그 향이 제대로 안 난다. 가을에 나무가 땅으로 잎을 내려놓는 일을 준비할 때 말톨을 많이 만들어 축적하면서 향이 번져 나오기 때문이다. 잎이 늙으면 늙을수록 향기로워지는 나무. 가장 싱싱하거나 단풍이 절정일 때보다 잎이 죽기 직전에 가장 향기로운 나무.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기 직전부터 떨어진 직후 사이 그 향이 가장 강한 편이다.

흔히 향을 내는 식물은 잎을 비비거나 가지를 꺾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즉시 강한 향을 발산한다. 이건 휘발성 정유 성분 때문이다. 하지만 계수나무는 조금 다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늙어가는 잎에 그 향기 물질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쌓아 나무 둘레 전체를 은은한 달콤함으로 물들이는 식이다.

계수나무는 왜 시들어가는 잎을 떨구는 바로 그 시점에 그렇게 많은 말톨을 축적하는 걸까? 이 질문에 확정적인 딱 하나의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 작용일 수도 있고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물질대사이거나 특정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일 수도 있고 이러한 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어서다. 어쨌거나 계수나무의 말톨에서 기인한 그 향기는 기분을 좋게 하고 안정감을 주고 때로는 (너무 향긋해서) 흥분하게도 한다. 향수와 향미 증진제 등으로 계수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까닭이다.

 

원래 줄기 죽어도 새 줄기로 수백 년 살아

 

계수나무 녹음.

계수나무 녹음.


오늘날 계수나무는 중국과 일본에만 남아 있다. 백악기에는 훨씬 넓게 자랐을 것이라 학자들은 짐작하므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계수나무 혈통의 식물화석이 북반구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종류도 더 많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신생대 제3기를 통과하며 쇠퇴하기 시작했고 제4기에 이르러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는 일본과 중국에만 남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은행나무처럼 지구의 시간에 따라 세력이 번성했다가 축소한 것으로 본다.

백악기부터 이어진 계수나무 계통이 신생대의 기후 변화와 각종 교란을 견디며 지금까지 생존한 전략은 특별하다. 계수나무는 처음에는 씨앗에서 발아한 하나의 줄기로 자라다가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여러 개의 맹아를 만든다. 큰키나무로 자라는 중에 원래 줄기가 병들거나 말라죽을 것을 대비해 주변에 맹아를 밀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줄기가 죽더라도 새로 돋아 나오는 싹에서 자란 줄기가 수백 년을 다시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장수하는 것이다. 일본 중부 지치부산맥 자연림에서 226년 계수나무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주된 줄기 주변으로 7년에서 92년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맹아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한 유전 개체가 자기 몸을 구성하는 줄기를 계속 갱신하면서 수백 년을 살아가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수령 1천 년 안팎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계수나무도 있다고 들었다. 다만 이런 고목의 정확한 연대는 추정하기가 어렵다. 여러 줄기가 하나의 뿌리나 밑동에서 발생하니 단순히 줄기의 둘레를 재서 수령을 가늠하는 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수나무 낙엽에서 맡은 향기가 일본잎갈나무와 구상나무 군락지에서도 나서 놀란 적이 있다. 실제로 말톨은 계수나무뿐 아니라 잎갈나무속과 구상나무를 비롯한 전나무속 식물에서도 발견된다. 말톨이 계수나무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계수나무에서 유난히 대량으로 생성되는 것은 사실이다. 계수나무는 향기의 주인공이 말톨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성분의 역할이 강력하나, 잎갈나무류와 전나무류는 말톨 외에 다양한 휘발성 물질을 지니고 있다.

 

식물은 수많은 화학물질 스스로 만들어

 

여러 물질의 기여로 나무가 풍기는 향을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감각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향을 매우 강하게 느끼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그 향을 감지할 후각 기능이 약하다고 한다. 동물이 외부 자극을 받아 뇌에 전달하는 기관인 수용체의 능력이 달라서겠지.

식물은 단순히 광합성을 하고 자라는 생물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화학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화학적 생명체이기도 하다. 계수나무는 그 사실을 단풍의 향기로 증명한다. 나무가 빚은 기체 상태의 자극물이 내 코의 말초신경을 건드린다. 그가 보낸 어떤 자극을 나는 알아차린다.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실감한다.

 

글·사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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