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니치 3세 김이향은 영화 ‘이방인의 텃밭’을 찍었다. 위 스틸컷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바다 건너 한국 땅을 바라보는 김이향과 어머니의 뒷모습. ㈜시네마달 누리집 갈무리
‘우리’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동료에게 말 걸기’(민음사 펴냄, 2025년)를 함께 작업한 민음사 신새벽 편집자가 내게 거듭 환기한 당부였다. ‘우리 세대’ ‘우리 업계’ 같은 말은 내부자 사이의 결속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 놓인 차이를 지우거나 은폐하는 효과를 내곤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 한국인’은 가장 골치 아픈 말이 아닐까. 같은 땅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민족이라는 한민족의 유구한 표상이 그 말을 떠받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는 재일코리안 3세 김이향의 ‘다음 리카에게’(민음사 펴냄, 2026년)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 충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 한국인이라는 말 속에는 자이니치의 얼굴이 얼마나 담겨 있을까?
‘일본에 있다’라는 뜻의 재일(在日)을 일본어로는 ‘자이니치’라고 한다.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이니치라는 단어를 접하면 사람들은 흔히 ‘일본에서 차별받는 동포’나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재일 한국인’을 떠올린다. 언론이 부각해온 전형적인 서사 속에서 자이니치는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가 남긴 상처의 증인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그 속에서 평범한 자이니치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 일본에서 특별영주자격으로 살아가는 자이니치 인구는 약 27만 명에 달하지만, 그중에서 조선학교나 한국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수천 명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자이니치는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한반도의 역사나 문화도 충분히 접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김이향은 ‘두 이름의 이방인’이다. 일본에서는 긴리카, 한국에서는 김이향으로 불린다. 그는 1991년 도쿄에서 태어난 자이니치 3세다. 한국어는 성인이 된 뒤에야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 역시 도쿄 출신으로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자이니치 2세다. 일본 학교를 다녔기에 국적만 한국일 뿐 생활 방식은 일본인과 다르지 않았다. 김이향의 어머니는 “우리는 한국인이니까”라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정작 “우리 가족은 한국어는 물론 한국 음식, 한국 역사, 한국 노래까지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김해 김씨 족보에 아버지 이름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긴’(金)은 일본 이름에 없는 한국식 성이다. 긴리카는 어린 시절 일본식 성을 쓰는 친척들을 부러워했고, 평범하게 일본 사회에 통합되고 싶어 귀화를 원했다. 그러나 귀화하겠다는 딸의 말에 어머니는 격분했다. “귀화하면 이제 우리 호적에서 빠지는 거야. 그럼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인연도 끝이야.” 분노한 어머니를 보고 딸은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앙금과 의구심은 남았다. 어째서 어머니는 한국말도 못하면서 그토록 한국 국적에 집착했을까?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같았다”.
부모와의 갈등을 겪으며 김이향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대학까지 이어간다. 인류학을 공부하며 자이니치를 논문 주제로 삼은 그는 일본에서 자이니치가 제일 많이 사는 오사카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자이니치들은 자신과 달리 민족 정체성을 또렷이 지키고 한국식 이름을 문패에 걸어두며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김이향은 자신의 얼굴을 “기차 창에 비친 모습처럼 희미하고 흐릿하게” 느낀다. 한국어도 못하는 내가 자이니치로서, 한국인으로서 말할 자격이 있을까.
그렇게 교환학생으로, 대학원생으로 한국에 오게 되고, 한국에서 취업도 한다. 어쩌면 “그것만이 어머니를, 그리고 오사카에서 만난 자이니치를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 역시 장벽으로 가득했다. 일본에서는 한국 국적 때문에 제약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영주권 때문에 제도 바깥에 놓인다. 한국에 사는 자이니치 어머니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받는 자녀 보육 지원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외국인 자녀가 받을 수 있는 다문화가정 지원에서도 제외됐다. 자이니치는 내국인도, 외국인도 되지 못했다.
이후 그는 가족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이방인의 텃밭’(2025년)을 찍고, 그 작업을 바탕으로 자신과 어머니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다음 리카에게’를 쓴다. 어머니를 심층 인터뷰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비로소 완고한 고집의 내막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에게 한국 국적을 버린다는 것은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것은 민족의식의 결과도 아니고, 한국어를 못한다는 열등감에서 온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기 인생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한국 사람이기를 고집했다.”
어머니의 선택에는 자이니치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국적을 손쉽게 바꿔버린다면 고통스러웠던 삶 전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딸이 귀화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내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았어”라고 느낀 것도 그래서였다. 어머니에게 한국 국적은 견디기 어려운 짐이었지만, 자기 삶을 붙드는 끈이기도 했다. 말로 다 못할 위태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처음에 던진 물음은 단순했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귀화에 반대했을까. 김이향은 이전 세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며 그 고집의 의미를 하나둘 이해하게 된다. 자이니치 1세로서 조부모가 경험한 일본 사회는 한국인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었고, 한국인 정체성은 억압에 맞서는 보루이자 갈망의 대상이었다. 1세의 결핍은 2세에게 강박적으로 계승됐다. 2세부터 한국식 성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사회에 동화해 살아가야 하는 개인에게는 의무이자 폭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선택이 손녀인 김이향에게도 불안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자이니치 삼대를 묶어주는 것은 두려움이다. 김이향은 자이니치 “1세가 2세한테, 2세가 3세한테 한국 국적과 한국 이름을 계승한 것도 결국에는 두려움, 그러니까 위태로움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정체성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자신의 뿌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서 국적과 이름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만 정체성 역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정체성은 완고한 고집을 통해서만, 때로는 가부장적 폭력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흔적은 다음 세대에게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딘가 구시대적인 기운을 품고, 그 세대의 언어와 리듬에 완전히 맞물리지 못한 채 기묘하고 부자연스럽게 남아 있다.”
결국 이것은 “서로를 붙들어온 방식”의 문제다. 부모가 자식을 붙들고, 자식이 다음 세대를 붙든다. 국적과 이름은 때로 폭력적이고 낡은 형식이지만,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 초조함과 불안함을 이해할 때 이전 세대 사람들은 더는 극복해야 할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고통받는 동료가 되고, 자신 역시 같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는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조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것은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소수자의 경험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어떤 보편적 경험이다. 그 경험은 우리가 어떤 이름과 계보를 물려받으며 살아가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정체성을 지속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이유다.

‘날로 노는 홍대’, 홍성훈 지음, 민음사 펴냄, 2026년

‘다음 리카에게’, 김이향 지음, 민음사 펴냄, 2026년

‘래퍼와 공원’, 송재홍 지음, 민음사 펴냄, 2026년
김이향은 영화를 촬영할 때만 해도 자이니치 1세, 2세와의 단절을 생각했지만, 부모 세대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자기 마음의 소리와 닮았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조국에 집착하는 어머니의 그 구시대적인 감각이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시아계 혼혈인 비평가 안드레아 롱 추는 비평집 ‘권위’(동녘 펴냄, 2026년)에서 “모든 친족관계의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는 문화적, 유전적 기반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을 통해 계속해서 뛰어넘어야 하는, 작지만 무한한 심연을 발견하게 된다”고 쓴다. ‘우리 가족’도 ‘우리 한국인’도 혈통으로서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번 당사자가 그 계보를 다시 선택해야 하고, 그 심연을 다시 건너가야 한다. 인종, 이름, 국적, 호적, 가족사는 한 사람을 얽어매는 동시에 그를 붙들어주기도 한다. 그것은 억압이자 애착의 대상이다.
‘다음 리카에게’는 “내 땅에서 쓰는 인류학”이라는 카피를 지닌 인류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홍성훈의 ‘날로 노는 홍대’, 송재홍의 ‘래퍼와 공원’과 함께 출간됐다. “우리 땅”의 민족주의만이 아니라 “내 땅”이 문제다. 땅이란 온전히 나의 소유물도 아니고, 과거 세대의 유물만도 아니다. 나를 얽매이게 하는 그 땅은 “세대마다 의미가 전혀 다른 땅”이기도 하다.
땅의 의미, 계보의 의미, 정체성의 의미는 과거와 오늘이 똑같지 않다. 그렇다면 김이향이 쓰듯 이전 세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땅을, “그 흔적을 부수는 대신 해석하고, 이어 붙이고, 새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이 다음 세대에 남겨진 역할이지 않을까”. 완전히 맞물릴 수 없지만, 과거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이룬 그 비옥한 흙이 있기에, 나 자신만의 새로운 씨앗을 심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땅에서 내 방식대로 인류학을, 삶의 방식을 다시 쓴다. 과거의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를 덧대고, 그 흔적과 선택의 무게를 상기하면서 새로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기에 때로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물려받은 것을 끝내 모른 척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그렇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다음에 올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새로운 말문이 열린다.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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