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 최고기온이 29도까지 올라 초여름 더위를 보인 2026년 4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시민이 햇빛을 가린 채 길을 걷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에서 서울까지 벚꽃이 거의 동시에 개화했다. 4월 기온은 29도까지 치솟았다. 예전 같으면 봄나들이를 독려했을 뉴스조차 이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미래를 예측하는 데 여념이 없는 사이,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맞춰 반팔을 꺼내는 일상 속에서 파국의 예감은 날로 선명해진다. 기후위기는 기상 데이터로 계산되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몸에 들이닥친 세계감(感)의 변화다.
기후 파국 앞에서 어떤 철학이 가능할까? 사회학자 김홍중은 ‘가까스로-있음’(이음 펴냄, 2025년)에서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사회학과 존재론이 필요한지 묻는다. 이 물음은 지금 세계가 어떤 곳인지 묻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이상 ‘그냥’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동시에 피고 지는 봄날의 벚꽃을 보며 근심과 걱정을 품게 되는 세계. ‘그냥’의 소멸. 우리는 이제 ‘가까스로’ 살아간다.

‘가까스로-있음’, 김홍중 지음, 이음 펴냄, 2025년
김홍중은 우리가 ‘그냥’의 세계에서 ‘가까스로’의 세계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진단한다. “그냥의 세계는 삶의 자동성, 관성과 습관, 자연스러움, 영속성에의 믿음이 주도하는 세계다.”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세계에서는 철없이 만개하는 봄꽃들을 보며 기쁨을 느끼고, 그냥 불어오는 바람과 그냥 빛나는 태양을 향유할 수 있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걱정 없이 믿을 수 있었던 평온한 무관심의 세계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별다른 성찰 없이도 적당히 신뢰할 수 있고 변치 않는 배경이 되어주던 ‘자연’이 사라졌다. ‘사회’라는 무대의 발판 역할을 하며 등 뒤에 남아 있던 ‘자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배경이 무너지고 주인공이 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한 지 오래다.
기후 파국의 세계는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간신히 생존해가는 ‘가까스로’의 세계다. 기후든 생태든 경제든 일상이든 모든 것이 가까스로 유지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둘러싼 군사 긴장, 국제유가의 급등락, 그와 결부된 일상은 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김홍중은 이 미지의 질서를 제대로 보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를 호출하며 ‘파국주의적 전회’를 제안한다. 여기서 파국주의는 단순한 비관이나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종말을 지연시키기 위해 가장 철저하고 급진적으로 종말론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김홍중은 우리에게 ‘예방적 묵시록’의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단언한다. “종말의 기운에 적셔진 자만이, 역설적으로 종말을 피해가기 위해 행위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02년
하지만 예언적 종말론조차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파국과 종말의 감각은 도처에 널리 퍼져 있지만, 경고는 좀처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서사에 매몰되면서 무너져가는 생태적 현실은 망각하고 싶어 한다.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펴냄, 2002년)에서 이런 모습을 ‘타이타닉 현실주의’로 설명한다. 빙산을 향해 가고 있는 배 안에서 “빙산에 부딪칩니다”라는 경고가 몇 번이나 울려 퍼지지만, 승객들은 “또 그 얘기냐?”라며 무시한다. 이른바 ‘현실주의적’ 경제학자들은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부르짖는다. 이런 가짜 현실주의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마주한 진짜 파국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고 식자들은 말하지만, 종말 서사 너머에는 더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이 놓여 있다. 예컨대 파국의 느낌을 이웃들과 공유하는 일의 어려움이다. 길가에서 이웃이 “날씨 참 좋네요, 그렇죠?”라고 인사할 때, 기상 데이터 수치를 들이밀며 “오늘 기온이 평균보다 10도나 높으니 틀린 말입니다. 기후 파국도 예감하지 못하는 얼간이 양반!”이라고 답한다면 대화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다.
모두가 같은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는 막연한 요청은 실제 무엇이 서로를 충돌하게 하는지 보지 못하게 한다. 기후 파국의 상황을 감수성과 느낌의 문제로 다룰 때,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충돌하는 갈등의 장면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태 파국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정치적 갈등은 공감 능력의 결핍보다는 무엇을 지켜야 할 생존의 조건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세계 이해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세계의 종말을 함께 느끼자’고 요구하는 것은 한쪽의 세계관을 표준으로 강요하는 일이 되기 쉽다.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은 파국에 공감하는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의 이해가 부딪치는 현실적 조건을 드러내고 그 위에서 말을 건네는 일이다. 기후위기는 감수성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영토와 애착을 지닌 이들이 격돌하는 정치와 외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아이우통 크레나키 외 지음, 박이대승·박수경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24년
세계 안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고, 세계 사이에는 충돌과 갈등이 있다. 가짜 현실주의와 우리만의 공감을 넘어 진짜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아마존 원주민 운동가 아이우통 크레나키의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오월의봄 펴냄, 2024년)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수많은 환경 서적과 이 책의 결정적 차이는, 크레나키가 아마존 원주민들에게 세계의 종말이란 다가올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16세기에 일어난 사건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임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그들의 세계는 백인들의 ‘대항해시대’에 한 차례 파괴됐다. ‘그냥’이 소멸한 세계, ‘가까스로’의 세계에서 아마존 원주민들은 이미 500년 전부터 살기 시작했다. 크레나키가 말하듯 이른바 “문명인의 방문을 받고 그로 인해 죽었던 인간 집단들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16세기에 이미 종말을 맞이했다.”
이미 일어난 한 세계의 종말을 되돌릴 수는 없다. 대신 크레나키는 지구 곳곳에서 세계들의 종말을 반복해서 일으켜온 근대 문명 프로젝트 자체가 종말에 이른 바로 이때, “더 잘 추락하기 위한 행복한 방법”을 함께 찾자고 제안한다.
크레나키가 겨냥하는 것은 근대성의 기본 전제인 ‘인간과 자연의 분리’다. 근대인은 인간 바깥에 있는 공기, 물, 토양, 동물, 식물, 미생물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그 의존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조직해왔다. 그러나 브뤼노 라투르가 말하듯 “코끼리, 식물, 사자, 곡물, 바다, 오존, 플랑크톤이 없다면 인간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아마존 원주민들은 이와 정반대 방향에 있다. 그들이 강을 할아버지라 부르고, 산을 형제로 여기며, 바위와 대화하는 것은 낭만적이거나 전근대적인 태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존재 방식을 조직하는 집단적 규칙이다. 중요한 것은 대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 태도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크레나키가 명확히 말하듯 이는 “규율 잡힌 훈련으로서의 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집단적 꿈꾸기는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공유하고 감각을 동기화하는 제도적 실천이자 의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단순히 생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매일의 소비 습관을 교정하고, 주변의 나무와 강을 돌보는 일을 삶의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는 ‘감각의 재교육’이다. 아마존 원주민이 비인간 존재와 대화하는 것은 꿈과 땅을 가꿈으로써 삶의 지향을 확인하고 일상의 선택에 질서를 부여하는 지속적 실천이다. 그것은 신비로운 세계관이나 자연친화적 태도가 아니라, 강·산·바위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며 전혀 다른 법과 정치를 세우는 끊임없는 투쟁 활동이다.

브라질 원주민들이 2021년 9월1일 수도 브라질리아의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어 원주민 구역 지정을 제한하는 법안에 위헌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원주민 구역으로 지정되면 외부인의 벌목과 채굴 등 개발 행위가 모두 불법이 된다. 원주민 보호와 아마존 원시림 보호의 일석이조 효과를 낼 수 있다. AFP 연합뉴스
‘지구가 아프니 우리 모두 연결돼 있음을 깨닫자’는 식의 인류애적 결론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오히려 우리 근대인은 ‘자연’과 철저히 단절됐고, 그 단절이 근대사회에 제도화돼 있다. 아마존 원주민과 근대인은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두 집단은 같은 땅에 살지도 않고, 같은 꿈을 꾸지도 않는다. 이런 불화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기후 파국을 인식하면서도 끝내 근대적 세계관의 언어 안에서, 같은 세계에 속한 이들과만 대화하게 된다.
크레나키가 제시하는 아마존의 목소리는 근대인이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지 되묻는다. 어떤 존재에게 말을 걸고 누구의 말을 애초에 듣지 않는지 드러낸다. 인공지능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을 도입하면서도, 데이터센터의 기후 영향이나 지역과의 상생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은 최신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존재와의 의존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려 한다.
땅과 꿈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로부터 회피하는 것을 근대인은 황홀하고 즐거운 상태로 여겨왔다. 그러나 크레나키가 보기에 “세계의 종말이라 불리는 것은 단지 이런 황홀하고 즐거운 상태의 중단일 뿐이다.” 그냥의 세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크레나키는 다시 대지로, 지구로 돌아오라고 요청한다. 가까스로의 세계에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도, 사회만이 아니라 대지도 다시 정치적 행위자가 된다.
여기서는 누구도 종말을 기다리는 관객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종말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참여자이자 행위자다. 크레나키는 이렇게 말을 건넨다.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곳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기쁨이므로,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는 그만 놀도록 하자.”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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