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역사적으로 일의 구성 요소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노동(먹고살기 위해 타인을 만족시키는 활동), 작업(인간의 수명을 넘어 지속가능한 인공 세계를 창조하는 활동), 행위(타인의 현존 앞에서 생각을 말하고 실천하는 활동). 지금 우리 시대의 언어로 적용해보면 순서대로 사업, 예술, 정치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중에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누가 봐도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내 친구 예서는 지난 3년 동안 타인을 위한 일을 했다. 큐레이터로서 예술가를 지원하는 갤러리 사업을 도우며, 새로운 조직 형태를 만들어가는 ‘탈중앙 자율조직’(DAO)에서 활동하며, 잠시 예술 활동을 멈추고 사업과 정치 사이에 머무르고 있었다. 예서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면 타인에 대한 사랑이 아주 커서, 오히려 ‘예술가로서 자기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힘들려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예서가 다시 예술 할 결심을 했다고 해서 만나봤다.
―지금 몰두하는 작품의 세계관은?“내러티브 콜랩스(Narrative Collapse)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영상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비디오아트야. 현대의 전쟁은 과거 중앙화한 매체가 프로파간다(선전) 했던 것과 달리 소셜미디어로 전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이번 작업으로 전쟁에 대한 다원적인 기록을 담고 싶어.”
―전쟁의 아픔을 겪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오늘도 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피드에는 맛집과 몸매 자랑뿐이야. 전쟁 영상은 어떻게 모으는 거야?“틱톡을 보면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춤추면서 전쟁을 반대하거나, 어린아이들이 3초 만에 총을 조립하는 교육을 받는 영상이 올라와 있어. 이런 영상을 큐레이션 해서 유튜브에 올렸거든. 이미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인데도 유튜브에서 차단당하는 걸 보고 놀랐어. 내가 얼마나 ‘필터 버블’(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성향이 비슷한 이용자들의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에 갇혀 사는지 알려준 계기야. 지금 인터넷에 우리가 접근 가능한 정보는 빙산의 일각이야. 지금 내가 하는 작업도 영상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검열 없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 사업과도 연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뭐야?“어느 순간부터 전쟁 영상에 끌려서 쳐다보고 있었고 거창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 영상을 모아가다보니 내 작품 세계를 사람들에게 떠듬떠듬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내 원동력 같아. 전쟁 이면에 인간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무엇보다 나는 정치·사업·예술 세 가지를 함께 가져가고 싶어. 내 예술 작업은 개인 감정을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어. 그리고 기회가 되면 뜻이 맞는 사람들과 사업 측면도 확장하지 않을까? 예술·사업·정치 모두를 포괄하며 나만의 길을 찾고 있어.”
김수진 컬처디렉터
❶ 내러티브 콜랩스
http://stardustcollector.xyz/artwork/narrativecollapse
전쟁 콘텐츠를 검열하는 유튜브보다는 내 개인 포트폴리오로 작품을 소통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정보는 아주 일부라 요즘은 다크넷(특정 프로그램이나 허가가 있어야 접속 가능한 네트워크)에 떠도는 영상까지 모으고 있어요. 사운드 레이어(배경음)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한국 그리고 미국 4개국의 애국가와 인터넷에서 수집한 사운드를 믹싱해 만들었습니다.
❷돈의 맛
http://stardustcollector.xyz/artwork/taste-of-money
내러티브 콜랩스 전에는 미각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작업하고 있었어요. 당신에게 돈의 맛은 어떤가요?
❸스타더스트 포트폴리오
Art will invade your brain. 예술은 당신의 뇌를 침범할 것입니다. 예술가로서 내 개인 포트폴리오입니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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