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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에 충실하게, 장르를 벗어나서, <지옥>의 연상호 감독

<지옥>의 연상호 ― 영화·TV드라마·OTT 시리즈 넘나드는 ‘연니버스’
등록 2023-03-10 17:41 수정 2023-03-22 01:40
2023년 2월 연상호 작가 겸 감독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년 2월 연상호 작가 겸 감독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그 사람 사진 , 한자 이름 , 그리고 물건만 있으면 방법할 수 있다 ” 는 ‘ 방법사 ’ 소진 ( 정지소 분 ) 과 “ 마음은 바라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 는 글귀를 해석해낸 문양해독가 수진 ( 신현빈 분 ). ‘ 연니버스 ’( 연상호의 유니버스 ) 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력은 매번 흥미롭고 , 이들의 행보를 바짝 뒤쫓고 싶게 한다 . 독특한 소재와 작법으로 연상호 감독은 독립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부터 주목받았다 . 2012 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칸영화제에 초청받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뒤 애니메이션 <사이비> < 서울역> , 영화 <부산행> < 염력> < 반도 > < 방법: 재차의 > < 정이 >, 드라마 < 방법 > < 지옥 > < 괴이 > 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연출과 집필을 맡았다 . 애니메이션 , 영화 , 티브이(TV) 드라마 ,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 등 한계 없이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드는 연상호는 현재 콘텐츠 업계에 가장 발 빠르게 적응하는 창작자다 . ‘연니버스’는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 2023년 2 월 23 일 연상호 감독의 작업실을 찾아 그의 왕성한 작업력 비결을 물었다 .

시나리오 완성까지 90%는 괴로워하는 시간

―가볍게 둘러보기만 해도 작업실에 쌓인 작가님의 시간이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이 작업실에서 진행하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외부 스케줄이 없을 때는 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곧바로 작업실로 옵니다. 보통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정도까지 여기서 보내는데, 내내 글만 쓰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잘 안되더라고요. 고민만 하다 시간 맞춰 집에 가는 경우도 많고. 사실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중 80~90%는 그냥 괴로워하는 게 일인 것 같아요. 내내 고민하다 마감이 다다랐을 때 열심히 쓰기 시작하고. (건담 상자들을 가리키며) 그 부담감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건담만 몇십 개를 만들었어요. 1년 전부터는 <나 혼자 기타 친다>라는 기타 독학 책을 사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머리, 몸, 의상 등을 각기 따로 사서 조립하는 피규어 커스텀에 빠져 있어요. 다 시나리오에 대한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것들인데 너무 몰입했죠.(웃음)”

연상호 감독의 작업실에는 ‘창작의 괴로움’을 잊으려 만든 피규어 조립물이 즐비하다.

연상호 감독의 작업실에는 ‘창작의 괴로움’을 잊으려 만든 피규어 조립물이 즐비하다.

―최규석 작가님과 부천만화정보센터 옆 만화카페에서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고 들었어요. 그 밖에 또 영감이 떠오르는 본인만의 장소가 있나요.

“요즘엔 프리프로덕션(대본·시나리오 완성 뒤 제작진 구성, 배역 확정, 각종 장비 준비, 스토리보드·콘티 작성 등 촬영 준비 작업) 때 헌팅 다니면서 많이 써요. 새벽 6시부터 봉고차 타고 온종일 돌아다니거든요. 그럼 이동하면서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 시간이 아까워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신들을 써둬요. 그래서 제 휴대전화 메모장엔 별 내용이 다 있습니다.”

―글 쓸 때 필요한 소재는 평소 어떻게 수집하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회의하면서 많이 얻는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옥>을 쓸 때도 최규석 작가와 거의 난상토론하듯 여러 상황에 관해 한참 이야기했어요. 기타를 치면서 느낀 건데 음악은 결국 코드의 조합 같거든요. 이야기도 비슷해요. 여러 이야기의 조각들을 나열한 뒤 이리저리 붙여보고 잘 붙으면 대본이 되고, 안 붙으면 폐기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그러다 이 정도면 쓸 수 있겠다는 감이 올 때, 그때 글을 쓰기 시작해요. 최근엔 소재를 고를 때부터 산업적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합니다. 시나리오가 시나리오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투자’라는 큰 허들을 넘어야 하잖아요. 투자받았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니 이게 대중이 좋아할 만한 소재인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두루 생각합니다. 또 실사 영화와 드라마를 하면서는 대중성을 고려한 판타지적 소재를 많이 다뤘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2022년 최규석 작가와 판타지가 가미되지 않은 <계시록>이란 웹툰을 연재했어요. 마찬가지로 판타지 요소가 없는 <돼지왕>을 드라마화하기도 했는데요. 갈등 구조로만 형성된 드라마가 어느 정도까지 어필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균형을 맞춰나가려 해요.”

피드백의 즐거움이 없다면

―그런 과정을 거쳐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너무 시시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냥 ‘일’입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많은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죠. 근데 그러고 싶진 않아요. 마감 기한에 맞춰 글을 쓰고, 재밌게 잘 쓰려다보니 몇 가지 법칙이 생겨나고, 완성될 글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니 그에 맞춰 제대로 일해야 할 의무가 따르고. 글을 쓰는 게 직업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는 거죠. 물론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고 또 사람들의 피드백이 오면 기쁘기에 나름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껴요. 그런 것마저 없으면 아마 나만 재밌는 일만 하지 않았을까요. 최근 관심 가진 피규어 만들기처럼.(웃음)”

―처음 드라마 작업을 했을 때부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드라마는 영화보다 호흡이 길고 제작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어 여러모로 접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첫 드라마 <방법>을 집필하기 전, 드라마작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하다못해 한 회 쓰려면 몇 페이지 정도를 써야 하는지,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물어봤죠. 이후로는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은 부분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방법>은 tvN 드라마라 한 회당 시간이 58~60분으로 고정돼 있거든요. 그 시간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그런 형식적인 부분 외에 서사 구조 면에서 볼 때 관객이 반응하는 부분이 제가 의도한 부분과 항상 일치하진 않더라고요. 그럼 다음 작업을 할 때 그걸 좀더 보완하는 식으로 고려할 사항을 만들어갔어요.”

연상호 감독은 최근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과 시나리오 쓰기가 ‘코드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과 시나리오 쓰기가 ‘코드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속도감, 시리즈는 터닝포인트

―경험이 쌓일수록 영화와 TV 드라마, OTT 플랫폼 시리즈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와닿을 듯해요.

“아예 다른 형태라고 봐요. 만화에서도 단행본 작가와 연재 작가의 생태계가 다르듯이.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제가 <방법>을 쓸 때만 해도 대본이 4회까지만 나오면 바로 작업에 들어갔거든요. 하지만 OTT 드라마는 대본이 다 나와야 시작할 수 있죠. 또 드라마 에피소드를 한 번에 전부 공개하느냐, 한 주에 2회차씩 공개하느냐, 영화도 OTT 플랫폼에서 선보이느냐, 극장에서 상영하느냐에 따라 다 다릅니다. 캐릭터를 구상할 때도 영화는 속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을 많이 떠올렸거든요. 시리즈는 속도감보다는 오히려 터닝 포인트가 많이 필요해서 여러 갈등을 겪는 인물이 낫더라고요. 그래서 <지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대부분 딜레마를 갖고 있고, 앞으로 나올 작품들도 거의 다 그럴 예정이에요. 경험해야 할 매체의 특성은 여전히 많고, 매번 새롭습니다.”

―경험해야 할 영역이 여전히 많다고 말씀하지만 그럼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TV 드라마, OTT 시리즈까지 현재 가장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창작자인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경험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좋은 시기라는 생각도 드는데, 지금은 모든 게 뒤섞인 혼돈기예요. 뭘 알아야 방향을 잡고 나아갈 텐데 그걸 명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직접 돌파해나가는 수밖에 없죠. 이런 시기엔 경험만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창 그림 배울 때 ‘물속에 들어가 허우적대야 수영을 배우지, 물 밖에서 수영하는 법만 공부해선 수영을 잘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 같아요.”

―작품 준비할 때 레퍼런스(참고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인가요.

“이야기하고 싶은 테마가 생기면 그에 맞는 소재를 찾거나 고민하긴 하는데 글이 정말 안 풀리지 않는 한 많이 보진 않아요. 차라리 예전에 본 것을 중심으로 복기하죠. 특히 요즘에는 따로 작품을 볼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대신 아이들과 유튜브나 키즈 콘텐츠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럼 해당 산업의 흐름 같은 게 눈에 들어와요. 예를 들어 키즈 애니메이션도 몇 년 사이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거든요. 제작 과정도 당연히 달라졌고요. 전체적인 미디어 흐름이 천지개벽을 하다보니 그런 변화를 계속 생각해보게 돼요. 한동안 프로레슬링을 재밌게 봤는데 거기선 갈등이 무한하게 일어나거든요. 동료와 싸우고, 불륜이 일어나고, 새로운 갈등이 계속 끼어들고 대체돼요. 보면서 앞으로 많은 콘텐츠가 이런 방향으로 가는 건가 싶었어요. 특정 세계관 안에서 끝없이 갈등이 생산되는 구조. 요즘 OTT와 TV의 시즌제 드라마를 보면서 같은 걸 느껴요.”

연상호 감독의 집필 공간.

연상호 감독의 집필 공간.

감독의 연출 방식에 개입하지 않기

―실제 <지옥>도 시즌제 드라마로 집필하고 계시죠.

“네, 그래서 그런 점이 더 눈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시즌제라는 형식이 요즘 작업할 때 크게 고민되는 것 중 하나거든요. OTT 플랫폼 생태계상 인기가 없으면 후속 시즌이 안 나올 수 있어요. 작가가 시즌2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는데, 시즌1에서 끝난다면 그건 반쪽짜리 작품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지옥>도 하나의 시즌으로서 완결성을 갖되 다음 시즌을 보고 싶게끔 하려고 많이 고민했어요. 원래 <지옥> 만화 버전에선 박정자(김신록 분)가 부활하는 신이 없거든요. 만화의 완결성을 위해 뺐는데 드라마 버전에선 다음 시즌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전략적으로 넣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한 바는 아니었지만 <서울역> <부산행> <반도>도 차츰 세계관이 확장된 사례죠. 이미 영화로 경험해서 드라마에서도 더 수월하게 진행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여전히 어렵습니다. (웃음) <부산행>은 사실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졌으면 더 보편적인 시도를 했을 것 같아요. <부산행>의 좀비는 속도가 빠르고, 말하자면 기차를 위한 좀비라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제목도 다르게 지었을 거고요. 그래도 많이들 ‘연니버스’라고 세계관을 엮어 봐주시니 감사하죠.”

―<방법> <괴이> <선산>처럼 드라마 각본만 집필하는 경우 직접 연출할 작품의 각본을 쓸 때와 접근법이 다른가요.

“그것도 경험해가는 중인데 글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진 않아요.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연출을 맡은 감독님의 방식에 개입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괴이> 현장에 한 번도 안 갔고 <선산>도 한 번 들렀어요. <선산> 연출하는 민홍남 감독이 <부산행> <염력> <반도>의 조감독이거든요. 제가 가 있으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웃음) 현장에 두 시간 정도만 있다 나왔습니다.”

―20년 가까이 계속 장르물을 제작했는데, 감독님은 장르물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공유할 세계가 존재한다는 게 제일 큰 매력이에요. 특정 장르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한데 에스에프(SF)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좀비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좀비물 중에서도 서사 때문에 혹은 비주얼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그런 세세한 이유와 요소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죠.”

여러 세대의 다양한 취향에 촉각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대담을 진행할 때 ‘작업할수록 장르물의 틀 안에서 계속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데 그 시도를 장르물에서 어떻게 해나가고 계신가’라는 질문을 하셨죠.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어떻게 찾아가고 있나요.

“장르에 충실하되 장르를 탈피하는 것, 그게 숙제인 것 같아요. 장르라는 건 아까 말했듯이 해당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는 게 중요한데, 이들은 동시에 그 장르에서 탈피한 것을 보고 싶어 해요. 그렇지만 그 틀을 너무 벗어나면 안 되고 중간을 잘 맞춰야 해요. 정말 어렵죠. 어려운데 저는 그래도 계속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요즘 작품을 기획해서 대본을 쓰고 공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소 2년이거든요. 그사이 세상이 너무 달라지니까 미래를 예측하고 큰 흐름을 읽는다는 게 쉽지 않아요. 그때 지지대가 돼주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축적한 데이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요즘 대중에겐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아요. 갈수록 그런 것 같아요. 여러 세대가 제각기 다른 작품을 보고, 그 와중에 그들의 입맛도 계속 변화하죠. 그걸 작품을 통해 계속 감지하며 나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원래 <괴이>를 멜로물로 쓰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가요.

“정말 많아요. 최근에 영화 <러브레터>를 다시 봤는데 진짜 좋더라고요. 뇌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웃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다시 봤는데 역시 좋았고, 언론계 문제를 파헤치는 <엘피스 -희망, 혹은 재앙->이라는 드라마도 재밌게 봤어요. 좋은 표현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이른바 ‘막장 드라마’ 작풍을 띠는 것도 해보고 싶고. 다 제가 해보지 않은 장르와 형식의 작품들이죠.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건 다르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온다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연상호 작가 겸 감독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연상호 작가 겸 감독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연상호가 말하는 ‘시나리오의 힘’

연상호 감독에게 시나리오의 중요성에 관해 묻자 “시나리오는 설계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작업인데 최종적으로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요컨대 배우와 미술팀, 촬영팀, 심지어 연출을 맡은 감독까지 “모두가 하나의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게끔 하는 지표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안전한 설계도와 다름없는 각본”의 중요성을 알기에, 연상호는 매일같이 작업실 책상에 앉아 대본을 쓴다.

글 조현나 <씨네21> 기자·사진 최성열 <씨네21> 기자
에필로그

연상호 감독과 인터뷰한 날은 마침 <씨네21> 마감일이었다. 마무리 짓지 못한 글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복잡하게 얽힌 고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작업실 벽에 붙은 영화 <부산행> <염력> <반도>, 드라마 <지옥> 등의 포스터와 테이블마다 가득한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배트맨, 조커, 캣우먼, 울트라맨과 고질라를 비롯한 괴수들, <슬램덩크>의 피규어들, 영화 디브이디(DVD), 층층이 쌓인 건담 상자들까지. 사진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작업실 곳곳을 살피며 ‘여길 한 바퀴 돌며 대화를 나누다보면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와 취향에 관해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연상호 감독이 “마치 직장인처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에선 수많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며 여러 이야기 조각들을 꿰매고 맞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과정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마감에 대한 걱정은 잠시 잊은 채, 한 창작자의 세계를 면면히 들여다본 귀한 시간이었다.

작품 목록

드라마

<괴이>(티빙, 2022년): 불상과 눈이 마주치면 과거의 트라우마가 눈앞에 재현된다. 이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려는 이들의 이야기.

<지옥>(넷플릭스, 2021년): 예고 없이 벌어지는 지옥행 선고와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진실을 파헤친다.

<방법>(tvN, 2020년): 사진, 한자 이름과 소지품만으로 상대를 살해할 수 있는 10대 소녀와 사회부 기자가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연상호 작가의 첫 드라마 집필작.

영화

<정이>(2022년): 22세기를 배경으로, 인공지능(AI) 개발사의 연구팀장이 내전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엄마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군인을 복제해 전투 AI를 개발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방법: 재차의>(2021년): 주술사에 의해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가 살인을 저지르자 이를 막기 위한 ‘방법사’의 사투가 벌어진다. 드라마 <방법>의 스핀오프 영화.

<반도>(2020년): 고립된 반도에서 좀비를 피해 살아남은 자들과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인 자들의 치열한 탈출기.

<염력>(2018년): 재개발 지역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한 남자가 자신의 염력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

<부산행>(2016년): 열차에 오른 승객들은 안전지대 부산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좀비들과 대치한다. 연상호 작가의 첫 실사 영화.

한겨레21 1454호 표지. 서점에서 판매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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