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끝장날 것이다

인류 문명 붕괴 가능성을 탐구하는 ‘붕괴학’ <붕괴의 사회정치학>
등록 2022-10-29 15:55 수정 2022-10-30 09:36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와 미-중 경쟁의 공급망 재편이 전세계인의 일상을 힘겹게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카카오의 데이터센터 화재가 국가통신망 마비에 비견될 만큼 큰 불편을 일으켰다. 자원과 기술 문명의 토대 위에 구축된 현대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위태롭고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생태학 전문가 파블로 세르비뉴와 라파엘 스테방스는 <붕괴의 사회정치학>(강현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에서 ‘인류 문명의 붕괴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허황한 말세론, 뜬구름 잡는 묵시록은 아닐까? ‘붕괴’는 ‘위기’나 ‘재앙’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은이들은 지정학적 갈등과 사회경제적 위기 같은 지역 문제뿐 아니라 기후변화, 생태파괴 등 “인류와 생물종 전체를 위협하는 지구적 재앙이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었다”고 진단한다. 지나친 비관이나 주술이 아니라는 주장을 사회경제적 통계 분석과 과학적 예측 모델로 뒷받침했다.

지은이들이 정의한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의식주·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는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마지막 단계”다. 그 자체가 세상 종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엽적 위기이거나 금세 잊히는 일회성 재난은 더욱 아니다. 세계 인구는 20세기 들어 단 100년 만에 두 배가 늘었다. 같은 기간 에너지 소비는 10배, 산업광물 채취는 27배 늘었다. 지구적 차원의 심각한 불평등은 불안정을 동반한다. 우리 시대의 특징적 모순은 “문명이 강력할수록 더 무너지기 쉽다”는 것. 학계에선 금융-경제-정치-사회-문화-생태 붕괴라는 6단계 붕괴설도 나왔다. 인간과 인간(세계화), 자연과 인간(사회-생태 시스템)의 긴밀한 연결은 붕괴가 총체적 파국일 수밖에 없다는 걸 예고한다.

책의 초판이 나온 건 2015년. 지은이들은 2021년 개정판에 ‘후기: 6년이 지난 뒤’를 덧붙였다. 일종의 현실성 검증이다. 결과는? “6년에 걸쳐 실질적 붕괴에 대해 쌓아온 지식은 우리가 ‘붕괴학’이라고 이름 붙이길 제안하는 학술 분야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그사이 2020년 프랑스어 사전엔 ‘붕괴론’이란 단어가 등재됐다. “물질적 성장과 기술적 해결책으로 산업문명을 구원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끝장날 수 있다”고 지은이들은 경고한다. 붕괴의 뉴노멀과 디스토피아를 막으려면 인류의 삶의 방식에 ‘경로 변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도우리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5천원

청년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의 글 모음. 디지털 기기와 플랫폼 자본주의에 익숙하고 욕망에 솔직하지만, 현실은 늘 버거운 2030세대의 꿈과 일상을 담았다. 청춘의 발랄함 뒤편에 살짝살짝 스쳐보이는 우울과 불안, 그래도 가까운 이들의 사랑과 격려에 피워내는 감사와 희망. “사랑하는 J에게. 당신은 앞으로 오래 살아서 나와 더 놀아야 합니다.”

가난한 도시 생활자의 서울 산책

김윤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1만6천원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욕망과 개발의 도시 서울의 삶터에서 변두리로 내몰리는 이들의 하소연과 절규를 직접 듣고 옮겼다. 재개발·재건축은 어떤 이에게는 ‘노다지’이지만 노점상·홈리스·판자촌 철거민에겐 날벼락이다. 지은이는 합법적인 강제추방에 저항하는 이들도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이 있는 시민임을 일깨운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희정 글, 정택용 사진, 오월의봄 펴냄, 1만8500원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생산직 노동자 황유미씨가 스물셋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그 뒤로도 비슷한 죽음이 잇따랐다. 기나긴 법정 다툼 끝에 직업병 인정과 금전 보상이 이뤄졌지만, 생존자 자녀들의 몸에서도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라는 아이의 물음에 답을 찾아간 기록.

식민지의 식탁

박현수 지음, 이숲 펴냄, 2만5천원

영화 <암살>에도 나오는 서울 미츠코시백화점에선 멜론, 소다수,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새로운 음식과 맛집을 좇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 생겨난 것은 일제강점기 근대의 풍경이다. 국문학자가 <무정> <만세전> <운수 좋은 날> <산적>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상록수> 등 한국 근대소설에서 우리의 음식문화사를 길어 올렸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