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카피라이터 오다록(30)의 머릿속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 일을 오래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선배들을 보면 다 조금씩 낡아 있어. 일이 너무 많으니까.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이지만, 데드라인에 맞춰 빨리빨리 쳐내다보면 똑같은 일의 반복처럼 느껴져.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걸까.”
처음엔 다록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하지만 하나도 채택되질 않았다. “예를 들어 바밍타이거가 너무 좋아. 그들을 섭외하자고 제안하고 싶지만 광고주 입장에선 고려해야 할 게 많지. 대중성이 있는지, 브랜드랑 잘 맞는지.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게 광고일 할 땐 좋지 않은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며칠 뒤, 바밍타이거의 음악이 전세계 애플 광고에 쓰이는 걸 보고 다록은 생각했다. “아… 아닌가?”
회의 시간이면 늘 안드로메다에 가 있던 다록의 아이디어도 어느 순간부터 팔리기 시작했다. 잘하는 선배들을 보며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조금씩 학습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걸 파악하고, 그거에 맞춰 제안하는 연습을 했던 것 같아. 아이디어가 안 팔려 자괴감을 느끼는 것보단 나은데, 정말 내가 성장하는 방향일까.”
그래서 요즘 다록의 목표는 ‘회사에 적응하지 않기’다. “친구가 이직했는데 새로운 직장에서의 목표가 회사에 적응하지 않는 거래. 그 말을 듣는데 심장이 쿵 했어. 적응하면 고이잖아. 일도 굳이 이만큼 안 해도 된다 싶어 사리게 되고. 그럼 내 역량도 결국엔 줄어들지 않을까.”
요즘 다록이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바밍타이거’다. “11명으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그룹인데 다들 친구이자 동료야. 멤버 오메가 사피엔의 인터뷰를 봤는데, 친구들하고 놀면서 돈도 벌고 일도 하는 게 너무 축복받았다고 하는 거야. 나도 친구들과 단순히 노는 걸 넘어 시너지 내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어. 하지만 나조차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는걸.”
누군가 이 친구의 마음을 잘 건드리면 대단한 게 나올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 잘 생각이 안 났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나 같기도 했다. 누군가 나의 숨은 역량을 개발해주기를 바라지만 결국은 스스로 해야겠지. 사실 내가 다록을 인터뷰한 이유는 누구보다 B급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보는 채널을 말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단다.
“카광①이라고… 알아? 여장하고 여러 곳에 잠입해 실험하는 유튜버거든. 인간 군상의 민낯을 보는 재미가 있어.” 실로 이 채널은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보게 되는)를 자극하는 어둠의 대표주자로 유명하다.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볼 수 있는 채널은 없냐 물으니 다록은 ‘대라대라’②를 추천했다. 유명해지고 싶지만 관심받는 것은 무서운 혼종의 INFP로서 흥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 1위라나 뭐라나. “드립을 진짜 잘 쳐. 광고하는 사람들은 유행어에 민감해야 하거든. 근데 이 친구 노는 거 보면서 속성으로 아는 거지.”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기가 빨리는 느낌이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런 텐션이라 하니 한번 보기로 한다.
❶ 카광
❷ 대라대라
❸ 바밍타이거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주은 IP 프로듀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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