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해진 한국 유튜브 신에 긴장감을 주는 채널이 등장했다. ‘제 이름은 원이고요. 이곳은 제가 시끄럽게 독백하는 곳! <원의 독백>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동양 갱스터(폭력배) 할 것 같은 외모에,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유창하게 말하는 이 남자는 임승원. 1993년생으로 현재 서울 성북구 원룸에 거주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를 인터뷰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비디오는 영상제작자인 내가 꿈꾸던 유머와 세련미와 서정성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런 감각은 인터뷰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가 패션 브랜드 무신사의 오프라인 공간 ‘무신사테라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 주인공이 되어 팝업스토어(짧은 기간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상점)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기 어린 마음으로 달려가보니 어린 남성들이 그를 “형” “형” 하며 따르고 있었고, 그가 사는 원룸이 현대미술관의 오브제인 양 고스란히 옮겨져 전시돼 있었다. 한쪽에선 스웨트셔츠(흔히 ‘맨투맨티’라고 하는)를 팔았는데 가슴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learn to say fuck you to the world every once in a while.”(세상 사람들에게 엿 먹으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자.)
사실 여기까지 읽으면 그를 패기 넘치는 20대 남성 유튜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팝업스토어를 열면서 올린 영상 ‘날 보러 와요’(사진)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거기엔 이런 내레이션이 있다. “(구독자 수가 늘수록) 저는 과대평가받는 기분이에요. 조회수가 떨어지면 걱정돼요. 당신이 저를 잊을까봐 겁이 나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다시 솔직해져도 나를 그대로 사랑해줄 건가요?” 이 남자, 어쩜 이렇게 자신의 취약성을 잘 드러내지? 그 모습이 아름다우면서 보통 ‘관종’(관심 종자)이 아니구나 싶었다.
“정말 제대로 보셨어요. 저 관종 맞아요. 그리고 이 모든 건 철저한 브랜딩에 입각했습니다.”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수업 시간에 배운 걸 자신에게 적용해보기로 했다. 평범한 20대 남자 문과생도 브랜딩이 될까? 본인에게 무기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다 긁어모으기로 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글씨 쓰는 걸 좋아하고, 영어 하는 걸 좋아하고, 겨울에 반바지 입는 걸 좋아하고. 그중 보기 좋은 것만 카메라 앞에 내세웠다. 비주얼에 통일감을 줬고, 독백을 뜻하는 ‘monologue’와 자기 이름 ‘won’을 합쳐 ‘wonologue’ 로고를 만들었고, 영상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첫 스펠링 m이 w로 바뀌는 순간에 ‘띵’ 하는 소리도 넣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띵’ 하는 순간 반응하길 바랐어요. 사실 제가 반응하길 원했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를. 풀어진 상태에서 집중하는 모드로요. 언젠가 이 채널이 유명해진다면, 건너편 방에서 띵 소리가 들릴 때 ‘아, 저 사람도 <원의 독백>을 보고 있구나’, 이렇게 되면 좋겠어서.”
브랜딩의 천재인가? 제발 나도 해달라 애원하고 싶었다. “브랜딩은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거든요. 자기 앞에 표지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표지가 나의 실제 모습이랑 너무 다르면 그걸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요.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숨기기보단 잘 포장할 것!”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모태솔로의 겨울’이라는 영상 때문이었다. 자기가 그동안 ‘안 팔렸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그 영상엔 제 진심이 담겨서 그랬어요. 저는 결점을 내보이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고칠 의지가 있거나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저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 점을 개선하고 싶어서였죠. 그게 아니라면 내 단점까지 사랑할 수밖에요. 나는 뚱뚱해. 근데 나는 뚱뚱한 내 모습이 너무 좋아.”
고흐는 말했다. 나는 내 장단점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임승원은 마지막으로 창작에 불을 댕기는 영상 3개를 추천했다.
CASEY NEISTAT — DO WHAT YOU CAN’T
https://www.youtube.com/watch?v=jG7dSXcfVqE
2X9 —FLY TO THE SKY
https://www.youtube.com/watch?v=7y-eps3O-Ko
nathanfielder — THIN WATERMELON
https://www.youtube.com/watch?v=r3-Y31ONZuI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주은 유튜브코드 기획자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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