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사촌 동생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씽2게더>를 봤다. 요즘 흥행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었다. 동생이 이 영화를 보자고 했을 때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시리즈물의 두 번째 작품인데, 나는 첫 작품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번째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해서 선뜻 나섰다.
첫 편 <씽>이 극장에서 상영할 때는 내가 친구들과 자발적으로 연극을 만들어서 올리고, 영화도 한 편 찍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무대를 꾸리는 데서 느끼는 희열도 몰랐다. 이제 와서 첫 편을 보지 않은 게 후회된다. <씽2게더>가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공연을 무대에 올려본 입장에서 이입되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 및 다른 연출가들과의 갈등, 그럼에도 무대를 향한 놓을 수 없는 열망, 마침내 근사한 공연을 올렸을 때의 벅찬 감동 등 친구들에게서 봤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저런 무대를 올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온갖 갈등을 딛고서 ‘어쨌든’ 해내는, 무대에 올라간 사람과 올라가지 않은 사람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그마저도 동생 덕분이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얼마나 오랜만이었냐면,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극장 가는 길을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기생충>과 <알라딘>을 보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 재개봉을 보고 나서 처음이었다. 극장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고 또 불특정 다수가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가는 곳이라 면역력 약한 나로서는 가기가 꺼려졌다. 극장에서 맛보는 팝콘도, 음료수도, 길고 지루한 광고도 모두 그리웠지만 막상 극장에 가니까 2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영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못 알아듣거나 놓친 장면을 돌려 보고 지루한 장면을 빨리감기해서 볼 수 있는 매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나에게 한 번 지나간 장면을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상과 단절된 상태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책 읽을 때도 집에서 여러 사이트를 이용해 영화를 볼 때도 주변에는 생활소음이 넘쳐난다. 쉽게 다른 데 시선이 끌린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나와 내 옆에 앉은 동생이 모든 장면에 함께 몰입할 수 있다. 악당 캐릭터의 하얗고 곱게 표현된 털의 결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경험을 오랜만에 해볼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도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영화에서 무대의 막이 내린 뒤 캐릭터들은 또 다른 무대로,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난다. 마치 그들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영화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영화 속 무대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식으로 내가 봤던 영화들이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각각의 감독과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관은 판이하지만, 그걸 전부 소화하는 내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라면 어떨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건 단지 하나의 챕터가 끝나고, 그곳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을 정리하는 것일 뿐이라면. 특히 영화가 끝난 직후에 하는 이런 상상은 영화에서처럼 병에도 절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병이 인생에서 단 하나의 장치가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시련은 영화처럼 ‘어쨌든’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도 한동안, 나는 주인공이고 이 모든 것을 토대로 성장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며 영화와 공상의 경계를 헤엄쳤다.
신채윤 고2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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