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웹툰 편집자 면접을 보던 날, 당시 면접관인 팀장님이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해볼래요?”
일반 출판계에서도 분야를 넘나드는 건 어렵다고들 하지만 특히 ‘만화(웹툰) 출판’으로 넘어가면 일반 출판사로 다시 돌아가기가 무척 어렵다는 선배들의 경고를 숱하게 들었다. 당시 면접 자리에선 냉큼 “네!” 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만(이직 성공이 코앞인데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그 질문이 어찌나 마음에 남던지. 최종 면접에서 합격하고, 이직 날짜를 정하고, 새 근로계약서를 쓸 때도…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나 진짜 괜찮은 거야?’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나중에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어쩌지? 고작 2년차 비문학도서 편집자지만 나름 근사한 기획서도 몇 개 써놓았는데. 그중 하나는 책으로 나오면 이틀 만에 세일즈포인트(판매지수) 3만 점을 거뜬히 넘기고, 아아아주 운이 좋으면 예스24 오늘의 책이나 알라딘 편집자의 선택에도 소개될 것 같은데…!
그런 숱한 걱정은 만화책 초교지가 손에 쥐어지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님과 웃고 떠들며 머리를 맞대고 표지 일러스트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휘발됐다. 내가 옮겨간 곳이 만화가 아닌 다른 분야였다면 그 면접에서 “네!”라고 대답한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름 아닌 만화였기에, 내 두 손에 쥐어진 것이 만화책 교정지였기에, 다시 돌아갈 곳이 없을지 모른다는 막막함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만난 기쁨, 그러니까 남들이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덕업일치의 삶’을 드디어 이뤘다는 기쁨이 막막함을 이긴 것이다.
만화. 끈기가 부족해 무엇 하나 진득하니 붙잡고 있지 못했던 내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 등짝을 맞아가면서도 열렬히 사랑한 대상. 이전에 역사책을 만들 때도(사실 역사책을 만들겠다고 자원한 건 아니고 어쩌다 출판사에 취업했는데 하필이면 사학과를 나와서…) 출퇴근길 내 동반자는 에세이나 소설책이 아닌 웹툰과 웹소설이었다. 주말에 스트레스를 풀 때는 만화방에서 라면을 먹으며 만화책을 봤다.
그리고 2021년, 웹툰 출판 편집자로 일한 지 벌써 4년째다. 편집자 한 명당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웹툰 단행본이 두 개 이상이고, 거의 한 달에 한 권꼴로 새 책을 출간해야 한다. 한 권이 끝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책 본문 교정·교열을 보고, 한정판 단행본용 부록을 고민하고, 예약 판매 준비를 한다. 그래서 만화가 싫어졌느냐 하면, 아니 그럴 리가.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막막한 와중에도 네이버 웹툰에서 쿠키(콘텐츠 결제 수단)를 구워서 웹툰을 한 편 보고, 6월 출간 예정인 한정판 단행본의 부록을 무엇으로 만들지 고민하다 왔다만. 한정판용으로 작가님이 새로 그려준 일러스트가 엄청나게 멋지거든.
만나고 싶었던 작가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만화의 원본 일러스트로 고퀄리티 굿즈(부록)를 만들어 소장하고, 다른 독자들보다 먼저 웹툰 단행본을 읽을 수 있는 삶이라니… '성덕'(성공한 덕후)도 이런 성덕이 없지 않나.
유선 디앤씨웹툰비즈 편집자
*‘책의 일-웹툰 편집자’ 편은 3주마다 4회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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