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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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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안상수체’ 안상수의 ‘마루 부리’ 글꼴 이야기

한글날 ‘마루 부리’ 글꼴 내놓은 안상수,
삐쳤느냐 맺었느냐 획 하나에 목숨 건 역사
등록 2020-10-10 10:51 수정 2020-10-10 23:08
(왼쪽부터) 임지인 네이버 문화재단 사무국장과 글꼴 디자이너 ‘날개’ 안상수가 9월29일 경기도 파주 안그라픽스 ‘날개집’ 마당에서 ‘마루 부리’ 글꼴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섰다. 류우종 기자

(왼쪽부터) 임지인 네이버 문화재단 사무국장과 글꼴 디자이너 ‘날개’ 안상수가 9월29일 경기도 파주 안그라픽스 ‘날개집’ 마당에서 ‘마루 부리’ 글꼴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섰다. 류우종 기자


‘마루 부리’ 글꼴로 작성된 기사를 <한겨레21> 1335호 지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마루 부리 글꼴(시험판) 내려 받는 곳 hangeul.naver.com

글을 읽는다. 글자를 본다.
문장을 훑는 숙련된 독자의 안구는 0.2~0.4초 간격을 두고 멎고(보고) 움직이기를 반복한다.(단속성 운동) 그렇게 보는 건 띄엄띄엄 글자 몇 개뿐.(통상 10자 중 3~4자) 본 것을 잇고, 못 본 것을 추정해 의미를 이해한다. 어차피 보지 않은 글자를 차라리 생략해버린다면? 문장은 그저 불완전한 몇 단어의 나열이다. 의미는 사라진다.
이제 잠깐 잡지를 덮고.
방금 본 글자 모양을 떠올릴 수 있을까? 연구 결과는 대부분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윤명조130 글꼴로 적힌 <한겨레21> 지면 본문 글꼴이 실수로 뒤바뀐다면? 독자 항의가 빗발칠 수 있다. 글꼴이 바뀐 기사는 이전과 전혀 다른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글을 읽는다. 글자를 본다. 낱낱이 있을 때 알아챌 수 없던 것들이 한데 모여 일상을, 정보를, 생각을 바로 전한다. 세계를 짓는다. 신비한 일이다.
한글날 즈음, 한글꼴 세 개와 거기 얽힌 사람들을 만난다. 비장한 마음으로, 애틋한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각자의 글자를 말한다. 둥근 줄기와 가로 줄기와 기둥과 그 사이 공간… 너무 작은, 낱낱이 흩어진 획과 획 사이 어떤 마음은 기어코 전해진다. 또한, 신비로운 일이다._편집자주
참고 문헌: 헤라르트 윙어르 <당신이 읽는 동안>, 요스트 호훌리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화면에 띄운 마루 부리 글꼴을 설명하는 날개 안상수. 류우종 기자

화면에 띄운 마루 부리 글꼴을 설명하는 날개 안상수. 류우종 기자

날개는 문득 고개를 돌리며 손을 뻗는다. 눕고 선 책(아마도 수십만 글자의 묶음)들 사이에 놓은, 흑백사진을 가리킨다. 한 남자가 인쇄기 앞에 팔토시를 끼고 서 있다. 짧은 백발이다. 굵은 안경을 끼었다. “최정호. 저분 이름을 끌고 들어온 거예요. 배수진을 치는 거예요. 실수 안 하겠다. 저분 이름에 조금도 누가 되지 않겠다. 어쩌면 좀 비장한 마음이랄까요.”

대부분의 한글 글꼴에 흔적 남긴 최정호

한글디자이너 날개(68·날개는 안상수의 호다. 기사에서는 그를 호로 이른다)는 이제 사진 속 최정호와 엇비슷한 나이가 되어 있다. 글꼴에 관심 많은 청년 디자이너 날개는 1978년, 대학 시절부터 흠모해온 최정호를 처음 만났다. 디자인 잡지 <꾸밈>에 실을 인터뷰를 제안하고 자청했다. 당시 최정호는 인쇄·출판 업계에 알려졌을 뿐 디자인하는 사람들 사이에 거의 이름 없는 인물이었다. 한 출판사가 호의로 내준 사무실 한구석, 단출한 책상 앞에 앉아 최정호는 글자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10년 동안 잦을 때는 한 달에 두어 번꼴로 마주 앉았다. 사는 얘기, 글자 얘기, 세상 얘기를 했다.

날개는 1980~2000년대를 거치며 안상수체, 마노체, 이상체 같은 철학적이고 다소 파격적인 글꼴로 누구나 이름을 아는 한글디자이너가 되었다. 최정호는 1988년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SM신명조, 윈도 바탕체, 애플 고딕 같은 우리 일상을 둘러싼 대부분 글꼴에 그의 흔적이 담겨 있을 뿐이다.

날개는 20명 넘는 글꼴 전문가, 네이버문화재단과 머리를 맞대고 3년 동안 ‘마루 부리’ 글꼴을 짓고 있다. 모여서 “한글꼴의 역사적인 줄기에 잇닿아 있는 디지털 시대의 ‘정종’이 되는 글꼴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2020년 한글날을 맞아 네이버는 한글 2780자, 라틴문자 140자, 기호 226자인 마루 부리 글꼴을 공개했다. 시험판이다. 사용자 의견을 모아 2021년 한글날까지 다시 손질하고 글자를 더해 완성한다.

글꼴 이름에 ‘마루’(어떤 사물의 첫째 또는 어떤 일의 기준)를 붙였다. 민부리꼴(고딕체, 직선으로만 구성된 글꼴) 중심인 화면 글꼴 환경에서 부리꼴(명조체, 꺾이거나 맺는 등 필기구의 흔적을 담은 글씨체)을 대표 글꼴로 삼았다. 그래서 ‘마루 부리’다. “깨알만 한 것 가지고 꼬물거리는 일”(날개)에 3년여의 시간, 수십 명 전문가가 골몰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도대체 무엇을 두고? 날개, 임지인 네이버문화재단 사무국장, 구모아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팀장과 마루와 부리, 결국 사람 얘기를 한다.

한글꼴의 변화 과정 (왼쪽부터) 훈민정음(15세기), 덕온 공주가 쓴 궁체(19세기), 박경서가 납활자로 제작한 명조체(20세기 초), 최정호 말년 글꼴인 최정호체 원도(1988년). 자료: 간송미술문화재단 누리집 갈무리, 연합뉴스, 윤디자인 누리집 갈무리, 안상수

한글꼴의 변화 과정 (왼쪽부터) 훈민정음(15세기), 덕온 공주가 쓴 궁체(19세기), 박경서가 납활자로 제작한 명조체(20세기 초), 최정호 말년 글꼴인 최정호체 원도(1988년). 자료: 간송미술문화재단 누리집 갈무리, 연합뉴스, 윤디자인 누리집 갈무리, 안상수


마루 삐치고 맺고 찍은 흔적

“한글은 타이포그래피(활자)로 태어난 유례없는 글자”(날개)다. 훈민정음은 목판으로 찍었다. 기하학적 도형이 한데 뭉쳐 있는 모습이다. 이후 수백 년 동안 궁녀들이 붓으로 한글을 썼다. 글자에 삐치고, 맺고, 내리찍고, 맺는 필기구의 흔적이 더해졌다. 궁체다. 19세기 말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근대 활판 인쇄술이 건너왔다. 활자 조각가 박경서는 20세기 초 궁체를 바탕으로 납활자에 세로쓰기에 적합한 명조체 글자를 새겼다. 1950년대 이후 자모조각기(자동으로 활자를 조각하는 기계)와 사진식자기술(필름을 활용한 활판 방식)이 들어왔다. 각 활판에 담을 씨글자를 그려내는 일(원도 제작)이 중요해졌다. 글꼴은 디자인 영역에 들어섰다. 최정호는 흔히 1세대 한글디자이너로 불린다. “이후 지금까지 최정호 글꼴이 대부분의 명조체와 고딕체 계열의 전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송성재, <한글 타이포그래피>)

목판에서 붓으로, 납활자에서 원도활자로. 글자를 새기고 찍는 기술은 변했다. 거기 맞춰 ‘마루’로 부를 법한 글꼴이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멎었다. 이제 글자 대부분을 화면으로 보지만 주로 쓰는 글꼴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최정호예요. 컴퓨터 글꼴은 대개 그의 글꼴을 따르거나 정리한 정도이니까요. 컴퓨터 시대를 보지 못한 최정호의 마지막 글꼴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어요. 이제 그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그를 넘어설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거죠. 넘어서는 건 저분도 원하는 거고요.”(날개)

저분, 최정호, 대개 혼자였던 사람. “왜 제자 한 명 없느냐”고 어느 날 날개가 물었을 때, 최정호는 “글쎄 안 선생이 내 제자라고 하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멋쩍은 표정으로 슬쩍 말했단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말이에요.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는지, 제자라 여기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여전히 알쏭달쏭한 한마디를 품은 채 날개는 최정호를 뛰어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게 제자, 비슷한 사람의 일이라고 믿는다. “정신을 이어간다는 건 답습하는 게 아니라, 이전 것이 새로운 시대와 같이 숨 쉴 수 있도록 그다음 돌을 놓는 것이니까요.”

부리 천천히 갈까 빨리 갈까

우리가 보는 화면 속 글자는 대개 민부리꼴이다. 종이에서는 ‘부리꼴’, 화면에서는 ‘민부리꼴’ 정도 공식이 자리잡은 듯하다. “컴퓨터 초기에 화면 해상도 문제로 부리글꼴의 부리나 맺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어려운 탓에 단순한 민부리꼴이 자리잡았어요. 지금 기기들은 세밀한 부리꼴의 느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해상도를 지녔지만 여전히 디지털에서는 민부리꼴이 주로 쓰이죠. 가독성이 높다고 여겨요.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임지인)

가독성은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익숙함이 가독성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는 있는데, 그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독자는 익숙함에만 기대는 보수적인 존재인가? 어느 정도 변화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나? 이를 사이에 두고도 100년 넘는 ‘글꼴 전쟁’이 있었다. 이를테면 글꼴판 보혁 갈등이다. “가독성에는 조작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천천히 진화해나가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른 한쪽에는 독자들이란 다소의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가독성은 유연하다고 확신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디자이너들은 타이포그래피의 혁신을 간절히 원한다.”(헤라르트 윙어르, <당신이 읽는 동안>)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글꼴에 익숙한지는 결국 개인의 취향이나 쌓아온 경험에 달린 것 아닌가? 그렇다면 보편적인 익숙함은 존재하는가? 태생적으로 ‘보편적인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활자는 대중이라 묶어내기엔 사뭇 다른 취향을 가진 개인들 앞에 혼란스럽다. 전문가의 미감, 객관적인 효율성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1차 대전 이후 우아하고 예술적인 독일 글꼴 디자이너들의 글꼴은 잊혔다. 반대로 바우하우스 중심으로 퍼진 비개성적이고 철저히 기능적인 글자도 대부분 잊혔다.(요스트 호훌리,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중요한데 정답은 없는, 아득한 질문이 글꼴 짓는 이들 앞에 놓인다. 부리냐 민부리냐, 설핏 보기 사소한 차이 앞에서도 비슷한 질문은 여전히 반복된다.

읽는 이의 생각을 물을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2만5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가독성 면에서 부리꼴과 민부리꼴의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글의 목적에 따른 선호도는 차이가 났다. “‘소통형 글’에서는 민부리 글꼴을, ‘문학형 글’에서는 부리 글꼴을 적합하게 보는 경향이 뚜렷했다. ‘정보형 글’을 읽는 가독성 측면에서는 민부리 글꼴이 우세하나, 내용 자체와 더 어울리는 것은 부리 글꼴이라고 답했다.”(2019 네이버 디자인 콜로키움) 지금 한국의 디지털 독자들은 민부리꼴이 가볍고 선명한 글에 유리하다면, 부리꼴은 진중하고 세심한 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결과로 읽힌다. 민부리꼴뿐인 디지털 공간에서 진중한 글, 세심한 글 읽기는 한층 어려울 수 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다양한 디지털 글꼴이 필요하다”(임지인)는 얘기는, 그래서 디지털 공간의 다양한 읽기 문화와 쓰기 문화가 필요하다는 말과 통한다.

사람 사람의 온기를 어떻게 더할까

늘어선 마루 부리꼴 닿자와 홀자, 그 모양 하나하나를 두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듣는다. “마루 부리는 최정호 글씨 가운데서도 인쇄매체 가로쓰기에 적합한 최정호의 마지막 글꼴인 최정호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전 글씨들에 견줘 속공간이 커지고, 글꼴도 네모에 꽉 찬 형태이고요.”(날개) “여기에 화면 글꼴의 특성에 맞춰 가로 줄기와 세로 줄기의 비율을 조절하고, 부리나 맺음의 모양도 좀더 도톰하고 분명하게 잡아줬어요. 한 글자에 사용되는 점(도트)의 개수도 효율화해서 글꼴 용량을 줄이기 위해 신경 썼고요.”(구모아) 그렇게 나온 몇 가지 최종 시안을 두고 또다시 고민했다. 문제는 사람의 온기였다.

“좀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어요. 그러려면 결국 쓰기의 흔적을 좀더 남겨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였고, 최정호체를 최대한 반영한 ‘최정호를 잇다’ 시안에 더해 필기구의 흔적이 더 강한 ‘현대적인 붓’ 시안을 합쳐서 마루 부리 글꼴 디자인이 결정됐습니다.”(구모아)

사람의 온기는 디지털 시대의 보편적인 기준을 지향하는 마루 부리에서도 놓을 수 없는 가치다. 기술과 확립된 원칙을 넘어 담겨야 할 건 사람 손의 흔적이 주는 친밀감이라는 것, 최정호의 말이기도 하다. “비록 새로운 글꼴이 깨끗하고 짜임새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체질에 어색하게 보이면 읽는 이의 눈에 거슬릴 수 있다. 원도(글꼴)를 설계할 때부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넣는다면 틀림없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나의 경험, 나의 시도’, 날개가 1979년 최정호의 말을 받아 적어 잡지 <꾸밈>에 실은 글의 일부)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한글날 특집-글 자 꼴 마 음 꼴
http://h21.hani.co.kr/arti/SERIES/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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