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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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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고기를, 채소를, 밀가루를 의심하라

‘먹을 것’에 대한 철학적 탐구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
등록 2020-08-30 22:17 수정 2020-09-03 10:31

팔레오(구석기시대) 다이어트’는 우리 사회에서 수년째 주목받는 다이어트 방법이다. 농경시대 이전 원시인이 사냥과 채집을 통해 밥상에 올렸던 메뉴와 같이 고기와 과일·채소 위주로 식단이 짜인다. 우리의 치아와 위장은 모두 고기 섭취에 적합하게 진화했기에 현대인의 주식인 쌀·밀가루 등 곡물은 인간 몸에서 소화가 잘 안 된다는 게 팔레오 식단의 주요 근거다. 반면 팔레오 식단은 칼슘 섭취 부족으로 뼈와 치아를 손상할 수 있고, 탄수화물 부족으로 피로감과 두통이 유발되는 등 영양결핍 위험이 크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처럼 부딪치는 주장 중 어느 쪽을 수용해야 할까.

맞서는 건 이뿐 아니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이 ‘자연을 조작하면 괴상한 것이 만들어진다’며 자연 상태의 채소와 제철 과일을 즐겨 먹었다. 반면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지나치게 자연 그대로’라며 가공식품인 통조림 과일과 채소를 선호했다. 또 전통적 가치관을 전복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과일과 채소는 지성의 적들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간주하며 고기에 탐닉했다. 사유의 깊이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철학자들도 이처럼 섭식은 제각각이었다.

이쯤 되니 혼란스럽다.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나.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안진이 옮김, 부키 펴냄)을 쓴 마틴 코언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정말 심오한 질문”이라며 “이 문제에는 개별화된 대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지금까지 책 18권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철학자답게 앞에 나온 세 명 이외에도 피타고라스, 플라톤, 르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등 철학자들의 음식론과 식사법을 쭉 훑는다. 그런 뒤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데카르트 이후 철학의 첫 번째 법칙인 ‘모든 것을 의심하라’를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어떻게? 예를 들어 지은이는 ‘지방을 너무 많이 섭취하지 말라’는 엄숙한 경고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지방을 줄이려다 외려 가공식품과 열량이 높은 정크푸드를 먹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 지방은 혈액 속 포도당과 인슐린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해주고 피로를 덜 느끼게 한다. 올리브유·견과류·씨앗에 함유된 지방은 여러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등 순기능을 한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조언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아 자신의 조언도 의심해야 함을 환기한다.

음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뿐 아니라 ‘실용적 정보’도 함께 담겼다. 가령 우리가 먹는 빵을 빚는 밀가루에서 여드름 치료제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고, 저지방 요구르트를 먹는데 되레 살이 찌기도 한단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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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왜 인권위기인가. 차별금지법은 왜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진전됐지만 인권 관련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저자는 인권지식과 인권운동이 중심이 됐던 독재시대와 달리 민주시대에는 ‘인권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권은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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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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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세계화의 본질을 ‘20 대 80 사회’라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간파했던 <세계화의 덫>의 저자다. 새 책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붕괴를 예언한다. 4차 산업혁명, 극우 민족주의, 기후변화 등 굵직한 이슈를 분석하며 유일한 출구는 믿을 만한 분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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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박상영, 최민석, 이지민, 정세랑, 백수린, 권여선, 홍희정, 황정은. 문단의 인정과 독자의 사랑을 두루 받는 작가 9명의 사랑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을 묶었다. 사춘기 10대의 풋풋한 첫사랑부터 70대 노년에 찾아온 사랑,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랑까지 ‘9인 9색’ 사랑의 순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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