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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당신에게

인지과학자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
등록 2019-05-22 11:48 수정 2020-05-03 04:29

‘tl:dr’ 암호 같은 이 단어는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too long; didn’t read’(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의 줄임말로, 필독서만 읽거나 심지어 그마저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서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며 독서와 난독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던 인지과학자 매리언 울프가 10년 만에 새 책을 냈다. 디지털 기기 때문에 우리 뇌의 ‘읽기 회로’가 망가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어크로스 펴냄)이다.

전작에서 저자는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인류가 후천적으로 얻은 성취임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깊이 읽기’는 공감과 이해, 유추와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능력이라고 봤다. 하지만 엄청난 정보를 쏟아내는 디지털 세상에선 ‘훑어 읽기’가 표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UCSD)의 정보산업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기가바이트라고 한다. 이는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양이다. 많은 정보를 뇌에 담으려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뇌는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선별해, 훑고, 잊어버린다. 아는 것은 많아져도 깊이는 없다.

저자는 디지털 매체로 많이 읽을수록 우리의 뇌 회로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반영하게 된다고 말한다.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인쇄물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를 대하듯이 단어를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게 되고, 그러다보면 깊이 읽기가 가져다주는 것들, 즉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본성들도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읽기의 변화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 결과로도 설명한다. 종이책과 스크린으로 단편소설을 보여줬을 때 책으로 읽은 학생들이 줄거리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은 소설에서 간과하기 쉬운 세부적인 사건을 놓쳤다.

저자도 직접 실험에 나섰다. 어릴 때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의 를 꺼내든 그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자신의 뇌가 더 이상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실험을 위해 ‘강제 책읽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신이 났던 그는 “고집스럽고 불투명한 문체, 불필요한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로 혼란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책을 얼마나 빠르게 겉핥기식으로 읽었는지, 그 바람에 문장의 깊은 층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학습 도구가 되기도 하는 디지털 기기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면서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연한 뇌를 가진 어린 독자들이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양손잡이 읽기 뇌는 인쇄 기반 읽기 능력과 디지털 기반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춘 뇌를 말한다. 이를 위해선 교육 당국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제 디지털 기기가 없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필요 없으면 퇴출되는 것처럼 우리 뇌의 능력도 다르지 않다. 잠시라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고 ‘다시 책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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