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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따위로 감히 ‘문학’을 설명하다

오혜진의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등록 2019-05-10 14:35 수정 2020-05-03 04:29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미투 운동’ 등의 사태를 겪으며 퍼진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꿨다. 문화예술계는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한국 문학과 비평계가 찬양해 마지않던 ‘남성중심주의’ 문학도 다시 읽히고 있다. 진보문학의 위대한 성취로 평가됐던 소설 에서 주인공인 영희가 가족을 위한 희생을 명분으로 어떻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답습해 보여주는지, 김훈의 소설 속 여성들이 ‘피, 땀, 젖’ 같은 냄새로 휘발되는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의 논의에 젊은 여성 독자들의 관심이 쏠린 지 오래다.

문화·문학연구자 오혜진은 첫 단독 저서 (오월의책펴냄, 2만6천원)에서 “‘문학’ ‘문학적’이라는 건 대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의 제목을 놓고 고민하면서 궁금해졌다는 이 단어들은 쉽게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한데, 저자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다양한 주제의 문학을 두루 살핀다. 먼저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주류 한국문학계의 지배 질서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짚는다. 주목하는 건 2015년 신경숙 표절 사건과 문학 권력 논쟁이다. 여성·장애인·이주노동자·성소수자 등에 대한 폭력과 도식적 재현에서 나타나는 ‘혐오’, 장르문학의 위계화로 드러나는 ‘순문학주의’, 세계시장 진출에 사로잡힌 ‘제국주의적 욕망’ 등을 한국 문학의 퇴행적 징후로 꼽은 저자는 이 개탄스러운 현실을 문학계가 ‘수준 미달’의 작가와 상업적인 출판사의 ‘타락’으로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꼬집는다.

페미니즘 소설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시대에 쏟아지는 비평의 문제점도 살핀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운다며 페미니즘 소설을 문학성이 결여된 ‘소재주의’나 ‘대중추수주의’로 후려치는 시도가 정당할 리 없다. 저자는 을 예로 들면서 “페미니즘 소설과 관련해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해당 작품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원적 주체들의 힘과 관계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느냐”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소설 주인공인 김지영이 ‘순진하고 무고한 피해자’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다원적 주체에 대한 상상력이 빠졌다고 짚는 그는 페미니즘 언어를 좀더 풍성한 자원으로 상상할 때 경유해야 할 쟁점들도 제시한다.

일련의 사회적 참사를 다룬 문학도 면밀하게 점검한다. 슬픔과 부끄러움, 재난과 파국, 애도와 연대 등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문학에 새롭게 던져진 주제다. 저자는 “이 주제들의 함의를 충분히 의식하고 재현할 수 있는 언어의 양식” 등을 발명하는 것이 한국문학의 과제라고 말한다.

책 제목의 ‘취향’에서 느껴지는 가벼움과 달리 588쪽의 책은 부피만큼 내용도 묵직하다. “문학이 일종의 ‘취향공동체’로, 비평이 ‘취향의 정당화’ 문제로 수렴된 지 벌써 오래”라는 저자는 “나의 취향 역시 여러 문학적 취향들과의 치열한 경합의 장에 놓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가 “‘취향’ 따위로 감히 ‘문학’을 설명하려고 드냐”고 따진다면 저자의 대답은 이렇다. “취향을 한사코 정치적 무풍지대로 상상하려는 당신의 그 취향이 이미 매우 ‘정치적’이라고.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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