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짜장면 먹던 날, 좋으면 말을 할 것이지 꼭 때리고 도망갔던 그 녀석, 숙제 안 해왔다고 선생님께 (뺨) 맞았던 기억. 그런 건 좀체 잊히지 않아요. 행복했던 건 좋은 기억으로 불쾌했던 건 우울한 사건으로 기억 저장고에 담겨 있죠. 모든 처음, 유사한 일들이 쌓여 하나의 봉분을 이루는 거 같아도 감정은 각기 고유한 생명체와 같잖아요. 영화 이 그걸 훌륭하게 보여주었고요. 경험의 층위가 다양하고 깊을수록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가 되는 건 그런 이치일 테지요.
책이나 옷은 그렇다 쳐도 기억은?처음 해보는 모든 것이 익숙해지면, 더 익숙해진 어떤 것들은 아쉽지만 버려야 합니다. 이사하는 날 어떠세요? 평소엔 읽지도 않으면서 꼭 다시 묶어서 가족의 원성을 샀던 책 보따리 없으세요? 단벌뿐인 듯 그 옷만 입었지만, 몇 년 동안 걸려 있는 것조차 잊어버렸던 옷은요? 어떻게든 가져가고 싶지만 죽어라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덕에 또 버리고 갑니다. 아까워 입맛을 쩍 다시지만 새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잊어요. 책이나 옷은 그렇게 버리면 되는데 문제는 좋았고 편안했던 기억입니다. 피부처럼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자신에겐 너무나 참이지만 어쩌면 이제는 고루해진 어떤 경험칙 말이에요.
어느덧 90년대 학번들이 상사나 선배가 되어 90년생 후배들과 함께 일합니다. 선배들은 농담도 잘하고 열려 있다는 소리도 제법 들었지만 ‘요즘 애들’과 마주하면 근육 자체가 긴장하다 못해 굳어버리는가봅니다. 그들은 일자리나 밥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어디서 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 말에 토라지면 안 됩니다. 밴댕이 소갈머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빈정대도 곤란하죠. ‘진상’ 혹은 ‘또라이’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제기, 그럼 어쩌라고! 그들은 상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못마땅한 녀석들을 오늘의 안주로 삼아 술잔을 기울입니다.
내가 경험한 진리를 버릇없는 낯선 세대에게 자꾸 알려주고 싶은가요? 선의에서 비롯된 지도인지 아닌지는 받는 사람이 압니다. 일방적으로 반복되면 ‘꼰대질’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세계의 속성은 ‘우리가 그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변해’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좋은 기억에 연료를 대주는 내 경험, 내 편과만 어울릴 수 없습니다. 비슷한 삶의 경험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내 신념을 지켜주지만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문을 닫기도 하니까요. 저는 언제부턴가 이게 제일 두려워졌습니다. 둘러보니 주변엔 나와 말 통하는 사람들만 그득해서 더는 낯선 자극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지금이 가장 위험한 순간임을 알아차렸지만 저항했습니다. 는 일본 드라마 제목을 외우면서요. 주문은 한동안 효과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도망치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던데요.
꼰대도 요즘 애들이었다로봇이 동료로 일한다는 그 유명한 4차 산업혁명이 차라리 빨리 당도하면 좋으련만 지금은 상황이 참 어정쩡합니다. 우리는 한동안 더 오래 선후배 사이로 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위계가 좀 덜한 곳이나 선배로 불리지(아닌가?) 대개는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서기관, 사무관, 주무관, 반장님, 실장님, 사수, 기타 등등의 서슬 퍼런 상하관계 아닙니까. 책임을 요구할 때나 직급이 필요할 뿐 동료애나 연대감은 동기나 동 세대만의 것이기 쉽습니다. 바로 이 점이 위안을 줍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꼰대 됩니다. 그러니 속상할 땐 떠올리세요. 지금 꼰대라 불리는 우리도 그 옛날에는 지독하게 말 안 통한다던 ‘요즘 애들’이었다는 걸.
김민아 저자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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