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불행을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신을 찾는다. 거꾸로, 그 납득할 수 없는 불행에 신을 외면하기도 한다.
권여선의 장편 은 2016년 계간 에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중편을 보완한 작품이다. 성경 누가복음 23장 34절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를 비틀어 제목을 달았던 소설은 절대자에게 고통과 부조리의 책임을 묻는데, 장편으로 다듬으며 그 심도가 더 깊어졌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여름, 열아홉 살 김해언이 공원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으로 이름 붙은 사건은 범인이 끝내 잡히지 않았다. 당시 용의자는 같은 학교 동갑내기 두 명. 치킨집 배달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해언을 봤다는 한만우와 누나의 새 차에 해언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했던 신정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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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해언의 동생 다언이 한만우의 취조 장면을 상상하며 지난 시간을 곱씹는 것으로 시작된다. 언니가 죽고 모든 것이 변했다. 자신의 얼굴에서 언니를 찾는 엄마를 위해 다언은 언니와 비슷하게 성형수술을 했고 ‘자신의 인생’을 잃었다. 사건이 벌어진 지 8년이 지나서야 다언은 사건의 진실을 대면하고 복수하고자 마음속 범인인 한만우를 찾아간다.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지만 다언이 지켜본 한만우의 삶은 너무 가혹했다. 군 복무 중 발병한 무릎 암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왼쪽 무릎을 절단해야 했던 한만우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다가 불에 데고, 육종이 폐에 퍼져 나이 서른에 세상을 등진다. 그에겐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 선우와 난쟁이 엄마가 있다. 한만우의 집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이 소설이 하려하는 이야기의 정수가 들어 있다 할 만큼 묵직하다.
사건을 수사한 형사도 다언도 어눌한 한만우를 범인으로 의심한 건, 한만우와 신정준의 계급적 차이가 작용했다.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죗값을 치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신정준을 향한 다언의 복수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작가는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펼친다. 단순한 개인의 복수담 같지만 기저엔 삶과 죽음의 의미, 불평등한 사회를 향한 분노 등이 담겨 있다. 다언은 복수가 끝날 무렵 고교 문예반 선배이자 해언의 동급생이었던 상희를 만나 묻는다. “망루가 불타고 배가 침몰해도,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용산 참사와 세월호 사건 같은 사회적 아픔에 대한 분노를 담아 절대자에게 항의하는 질문인데, 다언은 스스로 이렇게 답하기도 한다. “믿고 싶은데…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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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는 삶의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평범, 평화, 평온…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말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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