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 씨제이이앤엠 제공
한 해 영화시장의 본격 개장을 알리는 설 연휴엔 늘 스크린이 북적인다. 단돈 ‘만원’으로 가장 ‘가심비’ 좋은 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이 깊어간다. 한국영화를 볼까? 외화를 볼까? 코미디영화를 볼까? 액션영화를 볼까? 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며 모르는 문제를 찍을 때도 이렇게 갈등하진 않았을 터. 이럴 때 누군가 내 취향에 맞춤한 영화를 꼭 집어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허~, 영화 기자는 바로 이럴 때 써먹으라고 존재하는 것! 영화 담당 기자가 이번 설 연휴 독자의 취향을 저격할 작품을 종류별로 소개한다.
“여러분,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드라마 버전)
남들은 닷새간의 연휴에 기대 만발이라지만 고향 집 내려가기 두려운 사람도 많다. 명절만 되면 생전 없던 관심을 쏟으며 “언제 취업하니?” “언제 결혼하니?” “무슨 대학 갔니?”를 16발 탄창 연발 소총처럼 퍼붓는, ‘눈치코치 안드로메다행’ 친척들 등쌀에 괴롭고 우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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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코미디가 제격! ‘치킨 반, 웃음 반’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 좋겠다. 이 영화는 ‘범인’을 잡아야 할 형사들이 ‘닭’을 잡는 이야기다. 늘 사고만 치고 실적은 없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마약반 형사 5인방이 거대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위장 창업한 ‘수원왕갈비치킨’이 일약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밀려드는 손님에 돈맛을 본 형사들이 과연 마약범 감시할 짬이 있을까?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보다 더 웃길 수는 없다’는 풍문이 돌았던 작품인 만큼 “웃길 테면 웃겨보라”고 팔짱 끼고 벼르는 관객마저 단박에 무장해제시킬 정도다. 이병헌 감독은 (2014), (2018)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차진 말맛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했다. ‘코믹본좌’ 류승룡을 필두로 이하늬·진선규·이동휘·공명이 ‘독수리 5형제’ 저리 가라는 케미스트리를 뽐내는데, 5인방이 펼치는 ‘상황 개그’ 또한 일품이다. 물론 웃음만이 전부는 아니다. 촌철살인 대사에는 현실 속 우리의 웃픈 모습도 녹아 있다. 가난한 경찰의 애환, 후배에게도 밟히는 잔인한 조직생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자영업자의 비애까지…. 그 모든 것을 잘 짜인 코미디로 풀어낸 감독의 꼼꼼한 연출과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놀랍다.
주의: “치킨·양념치킨·생닭 등 463마리의 닭이 사용됐다”는 영화 관계자의 설명에서 보듯, 보고 나면 바로 ‘치느님’과 맥주가 당겨 다이어트에 적신호가 켜지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 <말모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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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내내 책 한번 안 들여다보고 놀아젖히는 아이가 걱정이라고? 고스톱도 일타쌍피면 족한데, 영화 한 편으로 재미에 의미, 역사교육까지 일타쓰리피를 노리는 욕심 많은 당신. ‘12살 관람가’라서 아이와 함께 보기에 좋은 를 추천한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한 1940년대 경성. 극장에서 해고된 판수(유해진)는 아들 학비 때문에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다 붙잡혀 엉겁결에 우리말 편찬 작업에 동원된다. 전과자에 까막눈인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배우며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고, 정환은 말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태는 판수의 모습에 ‘함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우리말을 없애려는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말모이 완성을 위해 전국의 국어교사를 소집하는 비밀 공청회를 열기로 한다.
‘천만 관객’의 신화 의 엄유나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우정을 쌓아가는 판수와 정환의 모습, 조선어 사전을 어떻게든 완성하려는 회원들의 희생, 자식에 대한 판수의 부성애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게 하는 쉼표도 있다. ‘후려치다’와 ‘휘갈기다’의 차이를 설명하거나 ‘엉덩이’의 팔도 사투리를 비교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지면서도 우리말의 세심한 표현에 놀라게 된다. 귀여운 아역 순이도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주의: ‘국뽕 코드’ 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관객이라면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 정도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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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 뉴(NEW) 제공
동물권보호단체 케어의 불법 안락사 논란에 연초부터 혈압이 올랐다고? 반려동물 인구 1천만 시대, 애니메이션 이야말로 필수 관람 영화다. 아이에게 ‘생명존중 사상’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온 가족이 함께 보길 권한다.
어느 맑은 날, 보더콜리 뭉치(목소리 연기 도경수)는 가지고 놀던 야구공 하나, 사료 한 봉지와 함께 산속에 버려진다. 주인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을 쉬이 인정하지 못하는 뭉치는 “기다려”라는 주인의 마지막 말처럼 기다림을 반복한다. 떠돌이 개 짱아(박철민)와 개코(강석)는 그런 뭉치에게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뭉치는 우연히 만난 들개 밤이(박소담) 일행과 짱아, 개코 등과 함께 진정한 자유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은 개를 학대하고 유기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은 물론, 주체적 자아를 가진 생명체로 변해가는 개들의 성장담까지 두루 녹여낸 작품이다. 2011년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쓴 의 오성윤·이춘백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제목인 ‘언더독’은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낮은 약자를 뜻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과 다양한 개들의 모습을 잘 살려낸 손맛 가득한 회화적 그림체가 눈길을 끈다. 도경수·박소담·박철민 등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드는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애니메이션에 현실감을 더한다. 여기에 동물의 유기·학대, 비참한 개공장 실태, 잔인한 로드킬(동물이 차량에 치여 죽는 것) 등 반려견을 둘러싼 현실적 문제까지 놓치지 않은 것도 가점 요소다.
주의: 애견인이라면 첫 장면부터 눈물을 펑펑 쏟을 테니 ‘손수건’ 미리 준비할 것. 영화 관람 뒤 아이가 “우리도 강아지 입양하자”고 조를 가능성이 다소 있음.
영화 <뺑반> 쇼박스 제공
“명절 연휴가 끝나면 이혼율이 치솟는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명절증후군’은 남녀 모두에게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가 돼버렸다. 울화가 끓어 화병 나기 직전이라고? 꽉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뚫어 뻥’이 간절하다고?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액션이 일품인 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보자.
은 통제 불능 스피드광을 쫓는 뺑소니 전담반 ‘뺑반’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엘리트 경찰관 은시연(공효진)은 포뮬러원(F1) 레이서 출신 사업가 정재철(조정석)을 수사 중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강압수사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된다. 시연은 뺑반이 수사 중이던 뺑소니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정재철임을 알게 되고, 그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뺑반 에이스 서민재(류준열)를 비롯해 비공식 전문가들까지 나선 팀플레이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관객에게 익숙지 않은 경찰 조직이자 한국 영화에서 처음 다뤄지는 ‘뺑반’이라는 소재가 가진 참신함이 가장 큰 무기다. 외피는 다소 뻔한 범죄액션 장르지만 스키드 마크, 깨진 범퍼 조각,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등 사소한 증거 하나까지 치밀하고 집요하게 수집하는 뺑반의 수사 기법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짜릿하고 속도감 넘치는 자동차 액션이 얹힌다. 위험천만한 질주, 격렬한 충돌과 전복 등 도로 위 카체이싱(자동차 추격전)이 주는 쾌감이 역대급이다. 실제 F1 레이서들이 참여해 사실감을 높였다.
의 김경찬 작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의 한준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공효진·조정석·류준열뿐 아니라 염정아·전혜진 등 관록의 연기력과 개성을 갖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주의: 자유로를 독일 아우토반처럼 질주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댈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가버나움>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이 중 어느 선택지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 당신은 야속한 사람~.” 하지만 까다로운 취향의 관객을 위해 남겨둔 비장의 카드는 늘 있는 법.
최신 시각효과 기술에 관심 있다면 (2월5일 개봉)은 어떨까. 일본 애니메이션 을 원작으로, 3차원(3D) 영화의 신기원을 연 (2009)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제작했다. 공중도시와 고철도시로 나뉜 26세기를 배경으로, 인간 정신과 기계 몸을 가진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최강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의 질감과 움직임, 200여 개의 안면 근육이 만들어내는 디테일한 표정의 변화, 눈동자 속 홍채 돌기까지 재현했다”는 평가다.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원하는 관객에겐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1월24일 개봉)을 추천한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촌에서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12살 소년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게 된 까닭을 되짚는다. 여성감독 나딘 라바키의 섬세한 연출력과 사실적인 시나리오, 거리에서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들의 생활연기까지 삼박자가 완벽하다. 내전·난민·빈곤·아동학대 등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전 지구적인 문제를 담담하게 비추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가슴을 더 아프게 후빈다.
주의: 주변에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없을 경우, ‘혼영’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인싸’(인사이더)보다 자발적 ‘앗싸’(아웃사이더)가 되길 원한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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