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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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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승과 이승의 경계 유재하가 살아났다

홀로그램으로 다시 돌아온 유재하…

보컬 그룹 스윗소로우와 한 무대
등록 2018-09-11 13:22 수정 2020-05-03 04:29
8월22일 서울 상암동 케이(K)라이브 공연장에서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유재하(맨 왼쪽)와 스윗소로우가 함께 노래하고 있다. 지니뮤직 제공

8월22일 서울 상암동 케이(K)라이브 공연장에서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유재하(맨 왼쪽)와 스윗소로우가 함께 노래하고 있다. 지니뮤직 제공

“신인 가수 유재하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재하씨 이름 석 자가 아직 청취자 여러분들한테 그렇게 익숙한 이름은 물론 아니고요. 그리고 방송에서도 노래만 가끔 들었을 뿐인데 오늘 이렇게 모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좀 긴장된 상태인데요.”

“유재하씨는 작사·작곡가로서 처음 나오셨잖아요. 근데 원래 꿈은 가수였어요?”

“조그마할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대중음악계 쪽으로요. 작곡 생활을 했다고나 할까. 그냥 못하는 솜씨지만 제가 처음 한번 내보는 독집 디스크고. 어떻게 얘기하면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좀 별난 짓을 해봤죠. 아무도 안 한.”

“유재하씨, 작사·작곡으로 이미 가요계에 데뷔를 했다가요, 가수로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디스크를 내놨습니다. 이라는 노래로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는 유재하씨. 노래 듣고 또 얘기 나누죠.”

“신인 가수 유재하씨 모셨습니다”

1987년 KBS 라디오 방송이 들렸다. 긴장한 탓인지 디제이와 대화하는 유재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전주가 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앞에 유재하가 등장했다. 꿈인가 현실인가. 1987년 8월 데뷔 앨범 를 낸 지 석 달도 채 안 된 11월1일 서울 강변북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그다. 그의 옆에는 스윗소로우 멤버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보컬 그룹이다. 통기타를 치며 을 노래하는 유재하와 그의 뒤를 받치며 코러스를 넣는 스윗소로우의 세 남자. 과거(1987년)와 현재(2018년),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무대였다.

지니뮤직은 지난 8월22일 서울 상암동 케이(K)라이브 공연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유재하의 모습을 처음 공개했다. 빅뱅, 싸이 등 홀로그램 공연을 선보인 바 있는 KT는 자회사 지니뮤직과 함께 고인이 된 아티스트를 홀로그램으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 주인공으로 유재하를 택했다.

나는 유재하의 얼굴을 실제 본 적이 없다. 유재하가 유일하게 남긴 앨범 표지에 그려진 초상화로만 그의 얼굴을 기억할 뿐이다. 그가 생전에 단 한 번 텔레비전에 출연해 을 부르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보긴 했다. 방송 무대가 어색했는지 얼굴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나는 무대에서 제법 떨어져 앉아 있었다. 유재하는 꽤나 멀리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왠지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 유재하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재하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무대 옆으로 펼쳐진 스크린 속 장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크린 속에선 김종진(기타)·송홍섭(베이스)·정원영(건반)이 을 연주하고 있었다. 유재하가 솔로 앨범을 내기 직전까지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이들이다. 유재하의 목소리와 이들의 연주는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잘 어우러졌다. 그래서 유재하가 더욱 유재하다워 보였나보다. 다만 무대 위 유재하는 젊었고, 스크린 속 세 남자는 나이가 좀 들었을 따름이다.

무대 위 유재하와 스크린 속 세 남자

정원영은 유재하의 초등·중학교 2년 선배다. 그의 동생이 유재하와 친구였다. 언젠가 동생이 말했다. “내 친구가 형을 만나고 싶어 해.” “그래? 집으로 오라고 해.” 정원영의 방은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유재하뿐 아니라 유재하의 동갑내기 친구 김종진, 전태관 등도 그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함께 마일스 데이비스와 팻 메시니의 곡을 듣고 이런저런 음악 얘기를 나눌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원영은 1984년 유재하와 함께 무대에 섰던 때도 또렷이 기억한다. “재하 모교인 한양대 축제였어요. 저는 건반을 치고, 재하는 선글라스를 쓰고 일렉트릭기타를 치며 노래했어요. 재하가 기타도 엄청 잘 쳤거든요. 사람들이 ‘꺄악’ 환호하면 재하는 그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술도 참 좋아했고요.”

조용필의 백밴드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하던 정원영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유재하를 밴드 마스터 송홍섭에게 추천했다. 송홍섭이 유재하의 집으로 찾아가니 유재하는 자작곡 를 들려주며 “내 노래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송홍섭은 조용필에게 이 곡을 추천했고, 결국 조용필 7집(1985)에 수록됐다.

김종진은 유재하와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을 같이 했다. 김현식의 백밴드 시절이었다. 김종진이 기억하는 유재하 또한 적극적이고 활달한 모습이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로 한창 전국투어를 다닐 때였어요. 한번은 대구에서 공연하는데, 현식이 형이 ‘키보드에 유재하입니다’ 하고 소개하니 여성 팬들이 꺄아 소리를 질렀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재하가 키보드 위로 뛰어 올라가 손을 흔들더라고요. 그날 밤 술도 무지 먹었죠.”

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유재하에 대해 품고 있던 선입견이 깨져나갔다. 나는 왜 유재하가 말수도 적고 수줍음도 많고 남들 앞에 서는 걸 꺼렸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을까.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선율과 섬세한 노랫말에 담아 전했기 때문일까. 이유가 뭐였든 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상상 속 유재하가 아닌, 진짜 유재하와 좀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재하가 바로 옆에서 부르는 듯했다”

세 사람은 유재하를 위해 거의 ‘노 개런티’로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원곡에서 유재하 목소리만 추출한 뒤 그 위로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연주를 새롭게 입혔다. 김종진은 “예전 같았으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선배 형들도 요청하고 해서 용기를 내봤다.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다”고 했다. 송홍섭은 “작업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많이 움직였다. 노래를 수없이 들으니 재하가 바로 옆에서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정원영은 “재하 생각도 많이 나서 오히려 즐거웠다”고 말했다.

유재하 홀로그램은 을 부르고는 밤하늘 별처럼 흩어져 사라졌지만, 유재하의 동료들은, 또 ‘유재하음악경연대회’가 배출한 싱어송라이터 후배들은 그를 떠올리며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소중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낀 게 홀로그램 기술을 눈으로 확인한 것보다 더 값진 소득이리라.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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