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소문난 ‘책벌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쌓인 지식을 녹여 등 인문학 책도 많이 펴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처음 여행기를 냈다.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를 26일간 여행하며 기록한 이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부평초처럼 물 위에서 떠다녔을 뿐 “이 책엔 새로운 정보도 없고 새로운 깨침도 없다”는데 그의 발길 따라 글로 여행을 다니다보면 머리가 묵직해진 느낌을 받는다. 등 수많은 책이 가이드북처럼 여행길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책벌레의 머릿속엔 늘 책뿐인지 스치는 풍경에서도 책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예컨대 출근하는 젊은이가 길거리 소에게 여물을 사서 먹이는 풍경을 보고 인도의 소 숭배 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과거에 육식을 했고 암소 숭배는 내셔널리즘에 불과하다는 주장(인도 역사학자 D.N.자)이나 소를 잡아먹는 것보다 살려두고 유제품과 소똥(연료)을 얻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기 때문에 소 숭배가 생겼다는 의견(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등이다.
인도 곳곳에서 동상으로 만나는 간디를 사유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저자는 간디 역시 인도 내셔널리즘으로 소비되는 상징이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뭄바이의 간디 기념박물관 ‘마니 바반’을 찾은 그는 인도의 경제적·정치적 독립을 이끈 상징물인 베틀과 물레 사용이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산업화 기계를 거부한 간디는 베틀과 물레를 통한 노동을 기반으로 인도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물레가 영국 수입 직물을 거의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간디가 힌두교의 분열을 걱정해 불가촉천민의 고통을 외면한 점을 사상가 암베드카르의 평전을 끌어와 비판한다. 카스트제도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는 한 제도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카스트가 없어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상층 카스트의 양보도 하층 카스트의 저항도 아닌 오직 자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 것”이라는 냉철한 시각도 보여준다.
인도 서쪽 뭄바이에서 시작된 여행은 남단의 카냐쿠마리를 거쳐 동쪽 해안의 첸나이(마드라스)에서 끝났다가 스리랑카로 이어진다.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세계적 관광지답게 두 나라의 다양한 유적지를 설명하는 글엔 저자의 설렘과 감동도 묻어난다. 남인도 최대 힌두교 성지 미낙시 사원의 고푸람이나 두 번이나 보러 간 마말라푸람의 아르주나 고행상을 설명할 땐 글로는 채워지지 않는 호기심이 생겨 인도로 달려가보고 싶어진다.
낯선 세계를 다녀온 여행자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다르지만, 21세기 인간들은 예외 없이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에 산다는 것, 이곳과 저곳의 삶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만 새삼 확인”했단다. 결국 삶 자체가 여행이다. 긴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이만한 명분이 또 있을까.
김미영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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