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29일 금요일
자고 일어나니 방 한구석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올해 들어 두 번째 침수다.
앞선 폭우에 비가 새 지붕 수리를 했는데 다시 물이 새니 허탈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책장 쪽이 아니라 신발장 쪽에서 물이 샜다. 책이나 일기장이 젖었다면 정말 화가 났을 거다.
나는 이 방이 좋다. 2014년 가을, 처음 이사 올 때 친구와 벽에 칠했던 푸른 빛깔 페인트. 날씨 좋으면 고기 구워 먹었던 옥탑.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옥탑에 나가 스크린 걸고 봤던 영화. 추운 겨울 술 한잔 들고 올려다봤던 밤하늘.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들처럼 총총한 기억 때문에 쉽게 떠날 수는 없겠지만 다시는 물이 새지 않기를 바란다.
물이 새는 집(사진)에 사는 세입자가 해야 하는 일은?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하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틀렸다. 답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중에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리 읍소해도 손쓸 수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수리공이 와도 비 내리는 중에는 새는 물을 막지 못한다.
2016년 ‘똑, 똑’ 하고 떨어졌던 빗방울이 2017년엔 ‘주르륵’ 물줄기가 됐다. 두꺼비집 가까운 쪽 벽을 타고 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전기가 끊어졌다.
세 번째 침수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양초를 켜고 화장실에서 커다란 세숫대야를 가져다 받쳤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면 모으기 쉬울 텐데 벽을 타고 흐르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있는 수건을 다 가져다가 물길을 내도 물이 옆으로 샜다.
주인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왜 또 그러지? 연락해놓을게, 일단 오늘만 참아.” 오늘만 참으라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 내일도 비가 올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차라리 지금 많이 내리고 내일은 갰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야 출근이라도 하지.
처음 물이 샐 때는 잠도 설쳤지만 그다음부턴 잘 잤다. 세숫대야의 수위가 높아져 빗방울 ‘드롭 비트’가 빨라지면 일어나 비우고 다시 잠을 청했다.
지난해에는 주인 할머니가 신신당부를 했는지 수리공 아저씨가 두꺼비집 쪽 한 평 남짓한 천장을 뜯어냈다. 문제는 그렇게 천장을 뜯어놓고 할머니가 수틀려서 공사를 중단했다는 사실. 한동안 다른 수리공이 오지 않아 천장 콘크리트 구조물이 드러난 채 거의 한 달을 살았다. 콘크리트 틈에선 다리가 많은 벌레가 가끔 기어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천장과 지붕을 수리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마감이 잘못됐는지 지난겨울 칼바람에 양철지붕이 들썩거렸다. 이것도 수리하는 데 두 달이 꼬박 걸렸다.
여의도에 사는 주인 할머니는 워낙 고령인데다 당뇨까지 있어서 운신이 쉽지 않다. 요즘엔 아예 전화를 안 받으신다. 문자를 몇 통 보내면 가끔 전화가 오는데 이야기해도 기억을 잘 못하신다. 고장난 냉장고와 현관문을 고치고 영수증을 드렸는데 1년이 지나도 돈을 안 주신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돈을 달라고 연락을 못한다. 전세 대란에 4년 동안 전셋값 올려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다. 아마 그것도 잊어버리신 것 같다. 그래서 쉽게 떠날 마음을 못 먹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친구들과 인터뷰하다 그냥 지금 집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벽에 총알 자국이 빼곡한 예멘의 방 사진을 보니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나중에 방 안 나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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