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나무가 사라진 길을 달려 어디로 가려는 걸까2018년 11월22일 은행잎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정말 ‘툭’ 하고 땅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가 났다. 땅으로 꺼지는 바람을 탔던지 은행잎이 떨어지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아침 출근길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던 내 마음도 ‘쿵’ 하고 내려앉았...2019-11-16 15:57
홍콩의 밤은 여전히 아름다운지2019년 8월30일 금요일 홍콩 ‘반송중 시위’ 취재를 마치고 원고지 50장이 훌쩍 넘는 기사를 모두 마감했다. 숙소 커튼을 걷어보니, 해가 언제 떴는지 모르게 져 있었다. 숙소가 있는 완차이에서 배를 타고 침사추이로 갔다. 홍콩 취재를 도와준 티미와 저녁을 먹기 위...2019-10-29 17:32
바람아 거세게 불어라2008년 1월12일 토요일“쾅! 우르르”포탄이 떨어진 듯한 굉음에 깜짝 놀라 잠이 깼는데 불침번 병사와 눈이 맞았다. “놀라지 마. 그냥 눈이 많이 내려서 그래.” “탁, 탁….” 밤사이 내린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산 구석구석에서 둔탁한 비명을 지르며...2019-06-20 09:41
열쇠수리공의 인건비, 의사의 인건비2018년 12월26일 “이번주에는 ‘일기 쓰는 남자’를 쓰자”고 편집장이 말했다. 오랜만이었다.그런데 일기장 상자를 보관하는 창고 열쇠를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출장열쇠 연락처를 찾았다. 전화를 걸어 집주소를 알려준 뒤 집으로 향했다. 문득, 옷장 속 옷들을 뒤...2019-05-08 10:15
서늘한 도서관 싸늘한 ‘금기’ 선언2017년 9월8일 금요일 “매앰∼ 매앰∼ 맴맴맴맴….”오늘과 내일 사이, 일기장을 펴고 창문을 여니 매미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한여름 떼로 울던 매미들은 간데없고, 매미 한 마리가 짝을 찾는 걸 보니 올해도 여름이 다 간 모양이다. 여름에서 가을로...2019-02-16 14:41
난민 취재하다 수습일기 꺼내 본 이유2013년 7월16일 택시에서 내렸을 때 길 건너편에서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도로를 가로질러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왕복 10차선이 넘는 도로라 멀쩡한 사람도 무단 횡단을 하기엔 먼 거리였다. 그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도로 한가운데 섰다. 그러고는 다...2019-02-03 01:38
냉장고가 된 내 방2018년 1월28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입에서 뽀얗게 입김이 나왔다. 보일러가 얼어 고장이 났다.지난여름에는 미친 듯 퍼붓는 폭우에 물이 새 물난리를 겪었는데, 이번엔 방이 냉장고가 됐다. ‘왜 내 작은 방은 이렇게 모든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걸까?’ 속으로...2019-01-12 14:00
금년은 금연입니다2015년 12월29일 화요일 “흡연은 질병입니다. 금연은 치료입니다.”익숙해진 공익광고를 보다가 ‘다시’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올해 담뱃값이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고, 보건복지부 출입기자가 담배를 피우는 게 영 면이 서지 않기도 했다. 이번에는 건강보험공단...2018-12-29 14:08
어느 이등병의 죽음2008년 10월20일 월요일어제 오전 4시50분, 같은 사단 55연대 원모 이병이 탄약고 근무 중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세상을 떠났다.서울에 사는 부모님은 5시간 뒤쯤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사고 현장에 도착한) 유가족 중 한 명이 발작 ...2018-11-24 15:40
첫눈에 알았다2018년 7월17일 “와! 이건 미쳤어!”고등학교 때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 원일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함께 간 술집에서 ‘릴투릴 테이프’ 기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였다. 나도 넋을 놓고 돌아가는 릴을 한참 쳐다봤다. 대부분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어 엠피스리(M...2018-11-21 14:15
‘뻘짓’이었더라도2005년 11월21일 30시간 뒤면 아주 재미있는 곳으로 간다. 죽도록 싫다면서 3년이란 시간을 목매달고 있는 곳이다.이번엔 조금 이상하다. 즐거울 것 같다. 모르는 문제를 만나도 반가울 것 같다. 어려운 문제는 어려운 대로, 쉬운 문제는 쉬운 대로 즐길 수 있을 것...2018-11-16 02:32
사과와 부동산2016년 9월14일 “사과가 열 개 있는데 너는 예쁘고 탐스러운 것과 못생기고 상처 입은 것 중 무엇을 먼저 먹겠냐?”추석을 맞아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감을 못 잡겠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아버지는 말했다.“얼핏 보기엔 10개의 사과를 다...2018-10-06 18:25
이비사의 추억2015년 9월5일 토요일 왜 이비사였을까? 연초에 조지 오웰의 를 읽다가 스페인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고 이야기하자 후배가 한 장의 클럽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비사를 가야 해요.”클럽의 어둠을 썩 좋아하지도 않고, 밤새 어울려 춤추다 사랑에 빠질 꿈도 없는 나는...2018-08-14 17:01
폭염, 피라미는 자유를 찾았다‘1994년을 뛰어넘는 최악의 폭염’이라는 보도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1994년이. 24년 전의 일기장을 펴기에 앞서 심호흡을 크게 했다. 조금 두려웠다. 사실, 1994년의 일기는 쓴 뒤로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유년 시절의 나를 만나...2018-08-07 16:27
모기야, 왜 그랬어2017년 8월29일 화요일 “위잉∼슉.”어제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았는데, 모기 한 마리가 귓가를 맴돌다 귓속으로 들어갔다.“툭툭툭툭.” 창밖은 화창한 여름 아침인데 귓속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기 날개가 귀벽을 때리는 소리였다. 잠과 술이 한번에 깼다.본능적...2018-07-24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