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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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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야, 왜 그랬어

한여름 밤 내 귀로 날아든 모기…

햇볕정책도 소용없고 결국 병원으로
등록 2018-07-24 07:16 수정 2020-05-02 19:28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2017년 8월29일 화요일




“위잉∼슉.”
어제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았는데, 모기 한 마리가 귓가를 맴돌다 귓속으로 들어갔다.
“툭툭툭툭.”
창밖은 화창한 여름 아침인데 귓속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기 날개가 귀벽을 때리는 소리였다. 잠과 술이 한번에 깼다.
본능적으로 면봉을 찾아서 귀를 팠으나 소용없었다. 생채기가 났는지 곧 벌건 피가 묻어나왔다.
폰을 꺼내 ‘귀 모기’를 검색했다. “플래시를 켜 귀에 대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럴듯했다. 빛이 모기에게 나오는 길을 알려줄 터였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플래시를 댔다. 따뜻했다. 중세의 어둠을 뚫고 고막으로 내려오는 한줄기 빛 같았다.
“툭∼툭∼.” 아까보다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모기는 살아 있었다. 내 귓속에.
햇볕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은 모기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평화롭게 나오게 하려 한 내 호의를 거절했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라’ 중얼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귀에 물을 부었다. 면봉에 쓸린 상처가 쓰렸다.
“투투투툭.”
모기의 날갯짓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더 빠르게 물을 부었지만 모기는 죽지 않았다. 되레 습기를 머금은 날개가 더욱 둔탁하게 귀벽을 때렸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지만 귓속에 모기를 둔 채 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좀 들렀다 출근할게요.”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에서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에 가는 사이 모기가 지쳤는지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막 출근한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씨익 웃었다. 길쭉한 빨대 같은 카메라를 귀에 넣었다.
“모기가 정말 고막까지 들어갔는데요, 지금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녀석은 내 귀 안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내 몸 속에서 하나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추모의 마음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녀석의 시체를 꺼내야 했다.
“잠깐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릴 거예요. 놀라지 말고 조금만 참으세요.”
긴 빨대 같은 것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짧은 전자음이 들렸다. 이후 그랜드캐니언 협곡에서 들었던 콜로라도 강바람 소리 같은 웅장한 바람 소리가 기계에서 뿜어져나왔다.
“휘∼융, 윙∼∼ 슉!”
버블티 타피오카가 빨대에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의사는 귀에 생채기가 났으니 적외선 치료를 받고 가라고 했다. 인체공학적으로 생긴 기계에 귀를 갖다 대니 귀가 따뜻해졌다. 편안해지면서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평소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팀장이 껄껄 웃으며 묻는다.
“모기가 귀 안에서 안 물었어?”
그제야 귓속 깊숙한 곳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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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에 물렸다는 피해 보고가 쏟아진다. 장마가 물러가고 날이 더워지면서다.

모기는 인간을 가장 많이 죽게 만드는 생명체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모기에 물려 사망하는 사람은 한 해 72만5천 명이다. 전쟁과 범죄 등 ‘사람’에게 죽는 사람은 47만5천 명이다.

과학기술은 ‘모기 박멸’을 추진하고 있다. 유전자조작으로 수컷 모기가 많이 태어나게 하는 방법, 모기 유충을 잡아먹는 딱정벌레 유충을 활용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다. 누구도 모기가 박멸된 이후 세상이 어떨지 장담하지 못한다. 생태계가 교란될 거라는 비관론과 큰 문제 없을 거란 낙관론이 맞선다. 그런데 모기를 멸종시켜도 인류에 해가 없다면 모기를 모조리 죽여도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귓속에 모기가 들어가면 빨리 병원에 가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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