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말이 되냐!” 드라마 를 보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서서 씩씩거리는 나를, 엄마는 참외를 먹다 쳐다봤다. 여주인공 윤진아의 연애를 반대하는 극중 어머니가 딸 잡으러 한밤에 딸의 남자친구 집으로 쳐들어가는 장면에서였다. “다섯 살도 아니고 서른다섯 살 먹은 딸이야. 내일모레 마흔이라고. 그런데 엄마가 헤어져라 마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이런 설정이 지금 한국에서 말이 되냐고.” 엄마는 참외를 한입 베어 물었다. 작은 씨들을 뱉어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이해되는데. 딸이 가진 것도 없고 부모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남자랑 사귀겠다고 하면 반대할 수도 있지. 윤진아네 엄마가 불쌍해서 돌봐준 남자라잖아. 동정했다는 건 자기랑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안 봤다는 거지.” 나는 분을 못 참고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엄마는 참외가 생각보다 덜 달다며 다음부터는 다른 마트에 가겠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강남 애들’에게 진이 빠진 엄마</font></font>윤진아랑 서준희랑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초반부터 남주인공이 별로였다. 네 살 아래인 남주인공은 여자친구를 강가에 내놓은 애 다루듯 한다. 여자친구가 아흔둘이면 이 설정이 이해된다. 층계만 내려가도 고관절 부러질라 불안할 수 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견뎌온 여자다. 그런 여자의 저력을 이 어린 남자는 조금도 믿지 못하면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갑작스러운 극중 엄마의 태클에 원더우먼 자세까지 취하며 분기탱천하는 건 이상하다. 둘의 연애가 가로막혀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윤진아 엄마랑은 다르다. 내 인생에 콩이야 팥이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공부 잘하는 큰딸’이어야 했다. 이 문장을 보고 재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조금만 참아주시라. ‘공부 잘하는’, 이런 비슷한 말만 들어도 40대인 나는 가슴속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런 덕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질질 흘리며 코를 파주고 싶은 충동마저 가끔 인다. ‘공부 잘하는 큰딸’이었던 덕에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거 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큰딸’은 무거운 멍에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말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한테 콩이야 팥이야 할 일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주류에서 1㎜라도 벗어나지 않겠다고 마음속에 혈서를 쓴 아이였으니까. 서울 강남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개포동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도로 하나를 두고 둘로 나뉘었다. 내가 사는 길 이편 13평 임대아파트 사람들은 연탄을 때느라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둬야 했다. 길 저편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강남’이었다. 그 중간에 있던 초등학교에 다닐 때, 6학년 담임선생님은 ‘진짜 강남’ 아이들하고만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엄마는 그 ‘진짜 강남’ 아이들의 보따리 과외 선생님이었다. ‘진짜 강남’ 아이들에게 진이 빠진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코트를 입은 채 이불에 쓰러졌다. 자기 또래 ‘진짜 강남’ 아줌마들이 건네는 과외비를 버느라 엄마 목에는 혹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학교에서 나를 지키는 길, 엄마를 지키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강남’ 아줌마들 앞에서 엄마가 기죽지 않도록 엄마의 명예가 돼주고 싶었다. 엄마가 요구한 적도 없는데 혼자, 장엄하게, 되지도 않는 짐을 진 거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결핍은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덜 자랐는지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른바 명문대를 갔고, 좋은 직장을 다녔고, 어머니는 기뻤다. 나는 엄마가 동창회에서 자랑할 만한 딸이 되어서 안심했다. 그리고 40살이 넘은 지금,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던지고서야 미루고 미뤄뒀던 성인식을 치르고 있다. 타인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누구인지 돌아보는 첫 연습을 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자식을 잡아먹는 ‘포식자’ 부모</font></font>이승욱·신희경·김은산이 쓴 책 를 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잡아먹는 ‘포식자’ 부모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식을 자신의 욕망을 담는 자루로 여기면서 사랑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려 아이를 닦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식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에서 윤진아 엄마도 “너를 위해 그런다”지만 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려는 ‘포식자’다. 그러니 부모도 아이도 성장을 유예하며 만수산 드렁칡이 얽히듯 기괴하게 엮여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조언한다. “자신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멈추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관계의 결핍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에서 와요. 자신이 타인의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포식자’ 부모의 사랑만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불안을 나도 잘 안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날뛰었던 까닭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의 차별을 보고 느꼈던 불안, 최선을 다해 일해도 모멸을 감수해야 했던 엄마를 보며 느꼈던 불안 탓이 크다. 한국 사회의 입맛에 꼭 맞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당최 나와 엄마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포식자’ 부모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 없는 까닭은 또 있다. 나도 ‘포식자’의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통제하려는 욕망, 텅 빈 삶을 그의 삶으로 채우려는 욕망, 그의 인정으로 나를 찾으려는 욕망, 그걸 사랑으로 착각한 적이 있다. “진정한 인정은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인정에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권위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그 권위를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일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퇴사를 칭찬해준 엄마</font></font>엄마한테 실업자가 됐다는 말을 하지 못하다 퇴사하고 두 달이 넘어 전화했다. 엄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잘했다. 마음 편한 게 최고다.”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 인생은 내가 보탤 게 없이 멋져. 나는 이제부터 엄마의 ‘그냥’ 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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