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을 석 달 앞둔 때였다. 그해 9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자행된 2차 인민혁명당 조작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 나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1975년 4월9일, 우홍선·김용원·송상진·하재완·이수병·도예종·여정남·서도원 8명이 2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대법원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법살인’이라는 이 사건이 벌어진 지 32년 만인 2007년, 법원은 재심에서 희생자 8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확정 뒤 5년이나 지난 때에 튀어나온 ‘두 개의 판결’이란 표현은 ‘반성 없는 무지는 곧 죄’임을 새삼 일깨웠다.
보리 출판사는 2007년 (권정생·이담 지음)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위안부’ 피해자, 서울 용산 참사,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만화·동화 형식으로 다루는 ‘평화 발자국’ 연작을 내왔다. 이 시리즈의 21번째 작품인 만화가 박건웅의 은 벚꽃이 흐드러진 1974년 봄에 ‘어디론가’ 끌려가 이듬해 봄 고문의 처참한 흔적이 새겨진 주검으로 돌아온 8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만화다.
8명의 부인·딸·아들, 친구, 선후배 등을 인터뷰해 재구성한 이 책은 체포·연행, 재판, 사형 등 일련의 과정과 그 뒤 가족이 겪었던 고통을 그려낸다. 이들의 기억에서 사형수들은 아내의 치마를 다려주고, 딸이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와도 격려해주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한-일 회담 강행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막으려 정권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라면, 2차 인혁당 사건은 유신 반대 움직임을 억누르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1차 인혁당 사건이 흐지부지됐던 것처럼, 2차 인혁당 연루자들도 얼마 지나면 풀려나리라 기대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고문과 공판기록 조작 등을 서슴지 않았다. 대법원은 피고인 참석도 없이 사형 판결을 내렸다. 부인들은 남편의 구명 운동을 위해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녔고 학습지 배달, 삯바느질,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박건웅은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절제된 선으로 그려나갔다. 가령 이수병 부부가 마지막으로 만난 장면을 보자. 아내는 남편이 사형되기 일주일 전쯤 마음 착한 교도관의 도움으로 형무소 마당을 지나가는 남편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관계가 탄로날까봐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다. 작가는 아내의 말풍선에 ‘읍읍’만을 적어넣으며 억지로 눈물을 삼키는 광경을 그려낸다. 담담한 묘사이지만, 작가가 전하는 가족들의 고통을 읽다보면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잠깐씩 숨을 고를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유골함에서 채 타지 못한 뼈덩이가 구르는 소리를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며 회고하는 송상진의 아들, 동네 아이들이 ‘빨갱이 자식’이라며 네 살 막내아이를 나무에 묶어놓고 처형하는 장난을 쳤다는 하재완 아내의 증언 등등.
작가의 펜에서 피어난 꽃잎들이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겨울 눈송이처럼 느껴진다. “아픔은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는 가족들의 눈물이 얼어붙은 것처럼. 그러나 ‘그해 봄’의 꽃은 언제나 다시 피어날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 그들이 살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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