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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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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가지로 고등어 굽는 겨울

퇴비부터 병충해 예방까지, 쓸 데 많은 겨울 나뭇가지
등록 2026-02-05 20:37 수정 2026-02-09 11:38

―충북 충주 편

남편이 포도밭에서 가지치기하고 있다.

남편이 포도밭에서 가지치기하고 있다.


우리 집 포도나무 가지치기가 시작됐다. 이웃 복숭아와 사과나무 가지치기는 벌써 수 주 전에 출발했다. “포도나무 가지를 치면 메르게즈 굽는 냄새가 난단 말이야.” 남편의 말이다. 메르게즈는 양고기로 채운 매운 소시지다. 프랑스 알자스 태생인 남편은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면 늘 포도나무 불에 구운 메르게즈 소시지를 먹고 싶어 한다. 그의 고향에서는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면 포도나무 불에 구운 메르게즈를 와인과 마시며 일한다고 한다.

“내일은 영하 15도까지 내려간다니 버드나무 가지도 잘라야겠다” 하더니 다음날 포도밭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싹 잘랐다. 이런 날씨에 나무는 왜 자르냐고 물으니 “날이 추우면 나무가 얼어 죽지 않으려고 당을 잔뜩 만들어 가지로 다 보내거든. 가지에 양분이 제일 많을 때 잘라두고 나중에 밭에 뿌리면 좋은 퇴비가 되지”라고 했다.

우리 포도밭에는 20그루 이상의 버드나무가 있다. 땅을 산 뒤 밭을 일구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빈 땅에 호밀을 뿌리고 버드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근처 개천을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 줄기를 꺾어와 심었다. 포도밭에 웬 버드나무를 그렇게 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먹는 열매가 열리는 것도 아니고 조경으로도 별로다.

“버드나무는 밭농사하는 사람이라면 한 그루 정도 있으면 좋아. 특히 과일나무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빗물이 고여서 흘러가는 곳곳에 버드나무를 심으면 버드나무 뿌리가 물을 빨아 마시지.” 물을 흡수해서 자라는 나무니 정말 잘 큰다. 우리는 매년 버드나무를 잘라 쌓아두고 1년 내내 다양하게 쓴다. 분쇄해서 밭에 뿌리는 것을 첫째로 하고, 봄에 새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데도 필요하다.

버드나무 줄기를 담가 우려낸 물에 새로 심을 나무뿌리를 하룻밤 담가뒀다가 땅에 심으면 병충해 없이 잘 자란다. 버드나무에는 페니실린을 만드는 주성분이 있어 항균작용이 뛰어나 퇴비로도 좋지만, 병충해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몽땅 잘라도 버드나무는 금방 새로운 가지가 쑤욱 올라온다. 한번 심으면 이자가 계속 쏟아지는 적금통장 같은 나무다. 휘청휘청 부드러워 엮어서 밭 울타리로 쓰기도 하고 여러 쓰임새가 좋다.

농부를 따라다니며 버드나무 가지와 포도나무 가지를 주워 밭 한쪽에 쌓아둔다. 그리고 고등어를 사기 위해 슈퍼에 간다. 메르게즈 소시지 대신 고등어다. 프랑스 농부들은 포도나무에 구운 고기를 최고로 친다. 알고 보면 포도나무 고등어구이가 더 맛있다. 포도나무 불을 지펴 고등어를 굽는다. 생선 비린내와 달큰한 포도나무 향이 연기가 되어 무럭무럭 올라온다. 여기에 화이트와인 한 잔이면 부러울 것 없는 농부의 식사다.

와인 한잔하라고 남편을 부르니 오지 않는다.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다. 따뜻하게 입고 포도밭에서 가지치기하는 그 순간의 평화로움이 좋아서 농부가 된 사람이다. 고등어에 포도나무 연기가 잘 배도록 은박지를 덮어두고 버드나무를 만지작거려본다. 기다란 버드나무 빗자루 2개 정도 만들까 싶다. 부드러우면서 질긴 버드나무 가지 빗자루 둘이면 올 한 해는 거뜬하게 마당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신이현 작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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