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봄을 알리는 유채꽃.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2년 가까이 맡아온 자회사 ‘씨네플레이’ 일을 마치고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 앞서, 나를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20대 청춘 시절에도 안 해본 ‘나홀로’ 여행을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감행한 건 그 때문이었다.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주도엔 박은석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대학 재수를 위해 서울에 와 있던 무렵 음악동호회지에 글을 쓰다 팝 음반 해설지까지 썼다. 방송도 곧잘 해 1990년대 후반 KBS 위성텔레비전 팝 전문 프로그램 를 진행했고, SBS 팝 전문 리포터로도 활약했다.
남녀공학 대학 첫 여성 총학생회장서울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그는 몇 년 전 고향 제주도로 돌아왔다. 제주에 음악적 토양을 다지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서였다. 서울 홍익대 앞 인디 음악인들을 초청해 음악 페스티벌을 열었다. 제주의 음악인들과 음악팬들이 꼭 홍대 앞으로 안 가도 되도록 제주 시내에 라이브 클럽을 열었다. 평화의 섬 제주를 음악의 섬, 문화의 섬으로 만드는 게 그의 오랜 꿈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박은석의 집으로 갔다. 덥수룩한 수염에 빨간 야구모자,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나를 집이 있는 건물의 지하실로 안내했다. 거기엔 근사한 녹음실이 마련돼 있었다. 지인과 함께 꽤 큰돈을 들여 만들었다 했다. 제주 밴드들이 서울에 가지 않고도 음반을 녹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요즘 음악 관련 책을 쓰고 있다. 귀로 듣는 음악을 활자로 표현하는 건,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잇따라 나올 책 계획을 들으니 벌써부터 기대감이 부풀어올랐다.
짐을 풀고 박은석과 차에 올랐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월정곰닭’. 지난겨울, 작은 닭곰탕집 문을 연 이는 음악인 정나리다. 그는 대학 시절 ‘운동’을 열심히 했다. 총학생회장까지 했으니 더 자세한 설명은 안 해도 될 듯하다. 남녀공학 종합대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으로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음악을 좋아했고 학생운동도 문화로 풀어내길 추구했던 그는 졸업하자마자 서울재즈아카데미에 들어가 작곡 공부를 했다. 이후 영화음악 작업을 하고, 밴드 한음파에서 건반을 치기도 했다.
정나리가 제주도에 온 건 밴드 허클베리핀 때문이다. 허클베리핀 멤버 이기용과 이소영이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밴드 매니저 노릇을 하던 그 또한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부터 룸메이트로 지내던 이소영과 함께 서귀포시 성산읍에 터전을 잡았다. 그가 갑자기 닭곰탕집 주인장이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총학생회장 출신 운동가가 졸업 뒤 갑자기 음악가의 길을 가는 것만큼이나 의외였다.
월정곰닭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다 됐다. 정나리가 깜짝 놀라며 우리를 맞았다. 내 딴에는 ‘서프라이즈(!)’ 방문이었으나, “보통 오후 4시에 문 닫고 들어가는데, 집에 가고 없었으면 어쩌려고 미리 연락 안 했느냐”는 반가움 섞인 타박이 돌아왔다. “재료가 떨어져 닭곰탕을 대접할 수도 없다”면서도 그는 남은 고기와 육수를 박박 긁어 내왔다. 여느 때와 달리 폐점 시간 이후에도 남았던 건, 뭍에서 후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영화 연출 일을 하는 후배와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둘이었던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넷으로 불었다.
아름답고 아픈 유채꽃정나리는 제주도에 올 때부터 작은 식당을 할 요량이었다고 했다. 음주와 요리를 좋아하는 그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했다. 1년 동안 가게 자리를 물색했고, 결국 월정리의 제주식 전통 가옥을 낙점했다. 근처 양계장에서 갓 잡은 생닭만 쓰고, 인공조미료 없이 깊은 국물을 우려냈다. 현대적인 간판과 인테리어에 끌려 들어온 관광객이든 호기심에 들른 마을 주민이든 그릇 바닥까지 비워내는 일이 잦아졌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독설가 박은석이 말했다. “솔직히 맛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근데 이 정도면 주변에 ‘한번 가봐, 괜찮더라’고 할 만하네.” 정나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식당 일을 하는 틈틈이 개인 음악 작업도 하고 이런저런 글도 쓴다고 했다. 고되어도 좋아하는 일이니 얼굴이 밝다.
여행 사흘째 되던 날, 성산일출봉에 갔다. 가는 길에 노란 유채꽃이 지천이었다. “푸른 바다 제주의 언덕/ 올레길마다 펼쳐져 있는 그리움을 따라”로 시작하는 노래가 떠올랐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다. 누군가에게 유채꽃은 아름다움·그리움이지만, 누군가에게 유채꽃은 아픔이다. 안치환은 에서 노래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라고.
그날은 제주4·3 70주년 다음날인 4월4일이었다. 몇 년 전 우연히 들른 제주4·3 평화공원에서 4·3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됐다. 단순히 1948년 4월3일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에 걸쳐 최소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대참극임을 새삼 깨닫고 몸서리쳤다.
제주도에 정착한 가수 루시드폴은 4·3 평화공원에 갔다가 느낀 바를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이번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직접 부른 이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은/ 4월이 오면 유채꽃으로 피어 춤을 춘다지/ 슬퍼하지 말라고 원망하지 말라고/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 미워하지 말라고 모질어지지 말라고/ 용서받지 못할 영혼이란 없는 거라고/ 노래한다지/ 춤을 춘다지” 유채꽃은 이렇듯 용서, 화해, 치유의 노래와 춤이 되기도 한다.
비우러 갔다 채우고 온 여행유채꽃을 보며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나직이 불러보았다.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사랑스런 노란 꽃들은/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을 끌어안고서/ 다시 그들의 노래를 들려주려고 해/ 너도 같이 들었으면 해/ 나는 여기에 있을게”
비우러 갔다가 많은 걸 채워 온 여행이 되었다.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탄핵 재판 선고 다음주로 넘어가나
[단독] 배우자 상속세 폐지 땐, 0.1% ‘초부자’만 혜택 본다
홍준표 아들, 명태균에 “가르침 감사”…명, 홍 시장에 정치 조언?
휘성 비보에 예일대 의대 교수 “한국엔 이곳 터무니없이 부족”
삭발·단식·밤샘…“윤석열 파면” 시민들 총력 집회
도올, 윤석열 파면 시국선언…“헌 역사의 똥통에서 뒹굴 이유 없다”
‘김건희 특혜 논란’ 양평 고속도로, 공무원만 징계 ‘꼬리 자르기’
전직 판사들 “윤 구속취소 무책임”…지귀연 결정 2가지 아킬레스건
여성경찰관, 트로트 가수 집 주소 알아내 찾아갔다 검거돼
“이승만 내란죄로 처벌했어야…윤석열 계엄과 성격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