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싱 벗 시브스’(Nothing But Thieves)라…, 그냥 도둑들? 2016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출연진을 확인하던 중, 특이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메인이 아닌 서브 무대이긴 해도 ‘헤드라이너’(무대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비중 있는 출연진)인데,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이었다. 누구지? 궁금해서 좀 알아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강렬함과 서정성의 공존</font></font>밴드의 시작은 2012년 무렵. 영국 에식스 지역의 학교 동급생 코너 메이슨(보컬), 조 브라운(기타), 제임스 프라이스(드럼) 셋이서 처음 결성했다. 이후 도미닉 크레이크(기타)와 필립 블레이크(베이스)가 잇따라 합류하면서 지금의 5인조 형태를 갖췄다.
영국은 참으로 부러운 나라다. 학교나 동네 친구들이 모여 뚝딱뚝딱 밴드를 만들면 비틀스 같은 게 나오니 말이다. 그렇게 나온 밴드가 다 비틀스 같을 리야 없겠지만, 록의 황금기가 저문 요즘에도 10대들이 계속 밴드를 만들며 노는 그 분위기가 부럽다는 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상당수 밴드 이름이 그렇듯 이들의 이름 또한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도, 별것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 사연을 가졌다. 멤버 조 브라운이 동네 피자가게에서 배달일을 할 때였다. 동료 점원 하나가 피자 토핑을 주인 몰래 조금씩 훔쳐 먹었다. 조 브라운이 이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하자 다들 깔깔 웃으며 “도둑이나 다름없네!”(Nothing but thief!)라고 외쳤다. 문득 이 말에 꽂힌 이들은 결국 밴드 이름으로 정하고 말았다. 5명의 도둑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들은 밴드 이름을 내건 데뷔 앨범 를 2015년 발표했다. 한쪽 앞발을 든 말의 검은 실루엣을 표지에 담은 앨범에는 강렬함과 서정성이 공존하는 음악들로 빼곡했다. 처음 들었을 때 1990년대 이후 영국 록을 대표하는 라디오헤드, 트래비스, 뮤즈의 느낌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이는 영국 앨범 차트 7위까지 올랐고 사람들은 “영국 록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치켜세웠다. 뮤즈는 자신들의 공연에 이들을 오프닝 밴드로 세웠다.
이젠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할 차례였다. 2016년 8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으로 갔다. 지붕 있는 서브 무대 공연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멤버들이 나왔다. 앨범을 미리 들었을 때도 좋았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라이브 공연은 더 좋았다. 기타와 드럼은 더욱 강렬했으며,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코너 메이슨의 목소리는 힘이 넘치면서도 감미로웠다. 아름다운 발라드 (Lover, Please Stay)를 부를 땐 요절한 천재 보컬리스트 제프 버클리의 음색도 겹쳐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이었다.
그날 이후 나싱벗시브스 1집은 운전할 때 꽤 자주 듣는 노래 목록에 올랐다. 지난해 9월 2집 앨범 (Broken Machine)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정도로 1집만 주야장천 들었다. 사실 2집은 영국 앨범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등 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난 여전히 1집을 더 좋아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러분은 지구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font></font>나싱벗시브스가 한국을 또 찾는다는 소식을 지난해 말 들었다. 이번엔 단독 내한공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의 뜨거운 반응을 생각하면 정해진 순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티켓 예매를 열자마자 2400석이 금세 매진됐다. 한국에서 나싱벗시브스의 인기가 이 정도일 줄은 공연 주최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더 큰 공연장을 잡았을지 모를 일이다.
공연 당일인 1월19일, 서울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로 향했다. 주인공이 나오기 전 국내 싱어송라이터 ‘문문’이 오프닝 무대에 섰다. 몇 년 전 뮤즈 공연에서 나싱벗시브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문문은 요즘 내가 주목하는 인디 음악가다. 특정 장르로 한정지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우면서도 색깔 있는 노래를 들려주는데, 특히 은 음원 차트에서 ‘장기 집권’을 할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문문은 “나싱벗시브스를 정말 좋아해 하루에 30번 이상 듣는다”며 “사실 예매 시간을 알람으로 맞춰놓고 오늘 공연 표까지 샀는데, 이렇게 무대에 서게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대기실에서 보컬 코너 메이슨과 인사했다”고 해맑게 웃으며 자랑한 그는 자신의 공연을 마치고 객석에 앉아 나싱벗시브스 무대를 즐길 채비를 했다.
드디어 나싱벗시브스가 나왔다. 객석에서 어느 팬이 던져준 모자를 집어 쓴 코너 메이슨은 무척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1집과 2집 노래들을 섞어 불렀는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곡을 관객이 따라 불렀다. 이른바 ‘떼창’.
앞서 영국이 참 부럽다고 했는데, 내한공연을 한 거의 모든 외국 음악가들이 정말 부러워하는 게 있다. 바로 한국 관객들의 떼창이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는 관객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한번 공연한 뒤로 관객의 떼창에 반해 다음 순회공연 때 한국에 반드시 들르는 게 불문율처럼 됐다. 오랜 순회공연으로 지친 음악가들이 한국 관객에게서 에너지를 받으면 몸과 마음이 씻은 듯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공연은 1집 수록곡 (If I get High) 때 절정을 이뤘다.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며 떼창을 했다. 2층 객석에서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노래를 마친 코너 메이슨이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은 최고의 가수예요. 지구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이고요. 진심으로 사랑해요.” 이어 “이 노래를 안 부른 지 꽤 오래됐는데, 오늘은 여러분을 위해서 하겠다”며 운을 떼고는 차분히 를 불렀다. 애초 준비된 세트리스트(공연에서 부를 노래 목록)에는 없던 곡이다. 관객은 이 곡만은 떼창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온전히 노래 속에 빨려 들어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팬과 함께 성장하는 밴드</font></font>앙코르까지 마친 나싱벗시브스는 태극기를 흔들며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 듯 들렸다. 아마 다음에 한국을 찾을 때 이들은 더 성장하고 더 유명한 밴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더 큰 공연장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이날 더 작은 공연장에서 더 적은 관객과 만난 소중한 시간을 그들도, 관객도 잊지 못할 것이다. 밴드는 팬들과 함께 성장해간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게 참 행복하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대중음악 담당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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