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술에 거나하게 취해 퇴근했는데 집 안이 적막했다. 이상하다 싶어 안방에 가보니 도담이가 감기로 앓아누워 있었다. 아내가 도담이의 체온을 재고는 “39도까지 올랐으니 정신 바짝 차리라”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요 며칠 도담이가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아 이날 낮 병원에 가서 감기 진단을 받았는데, 밤에 열이 확 오를 줄은 상상도 못하고 만취한 채 들어온 것이다. 체온계의 숫자가 39도를 넘어설 만큼 도담이의 몸은 펄펄 끓었다. 아내와 나는 급기야 도담이의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닦았다. 겨드랑이와 머리도 문질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해열제를 먹여도 소용없었다. 도담이는 버티기 힘들었는지 꺼이꺼이 울었다. 지난 10개월간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던 아이라 아내도 나도 ‘멘(털)붕(괴)’이 됐다. 열이 38도와 39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밤새 아파서 잠에 들지 못하는 도담이 때문에 아내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는 술기운이 올라 곯아떨어졌고, 다음날 아내로부터 제대로 욕을 먹었다.
간밤에 소동이 있은 뒤부터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우리 집은 ‘메리’하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출근한 사이 아내는 도담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와 소아과를 차례로 돌았다. 그 와중에 다시 열이 나는 바람에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가야 했다. 취재를 하다 이 소식을 듣고선 아이가 아픈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나 또한 목감기에 걸렸다. 함께 아이의 병간호를 해야 할 내가 골골거리니 아내는 화가 나고, 속상해했다. 나 역시 아이 걱정에 아내 눈치를 보느라 취재도 마감도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짜증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우리 가족은 결국 단체로 ‘우울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이브. 지난 며칠의 부진을 만회하고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동네 제과점부터 들러 예약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찾았고, 대청소를 했으며, 기력을 회복하는 도담이와 신나게 놀았다. 아픈 만큼 성장했는지 도담이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아프기 전보다 더 활발하게 온 집 안을 기어다니고, 기분이 좋은지 소리를 질렀고, 밤늦게까지 놀려 하며, 계속 안아달라고 보챘다.
감정 표현이 다양하고 확실해진 아이를 보면서 아내와 나는 아이가 성장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어 신기해하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던 아기가 온데간데없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 재취업에 성공해 1월부터 회사에 출근하는 아내 대신 아이를 돌봐줄 장모님의 손을 타면 아이는 또 어떻게 성장해 있을까. 좀더 자라면 ‘아빠가 안으려 해도 거부할 것’이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라 도담이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도담이 때문에 6년간의 결혼생활 가운데 처음으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우리 부부는, 내년 크리스마스 때 도담이에게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려줄까 고민을 시작했다.
글·사진 김성훈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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