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책은 요약 불가능하다. 사전이 그러하고 성서·불경이 그렇다. 요약을 허락하지 않는 책이 하나 더 나왔다. (느린걸음 펴냄). 448쪽에 문자 기록과 사진 484장을 총망라한 ‘뜨거운 기록’이다. 글쓴이는 김예슬(31). 고려대를 다니다 2010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써붙이고 자퇴를 선언한 이다. 자신의 20대를 휘저어놓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통과한 뒤 이 책을 냈다.
지난겨울은 뜨거웠다. 숫자가 말해준다. 1685만2천 명(촛불집회 참가 총인원). 0(집회 참가자 중 구속·사망자). 232만1천 명(한날한시 집회 최대 참가 인원). -17(최저기온, 12차 집회). 67(전국 동시다발 집회 개최 지역). 74(세계 각국 촛불집회 개최 도시). 2364(‘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참여 단체). 36.4(집회 중 하루 최대 행진 거리, km). 그리고 1(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
지난겨울은 소리 높았다. “애비는 유신, 순실을 맹신, 정치는 배신, 경제는 등신, 미국엔 굽신, 외교는 망신, 언론은 간신, 국민은 실신.”(손수 만든 등자보를 붙이고 나온 시민) “지도자가 앞장서서 원칙을 무시하면 안 된대이. 나라가 이래서 되겠나. 촌에 사는 이보다 못한 기 올라가 있으면 우야노.”(경북 의성의 75살 농민) “헌법 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을 통틀어 ‘권력’이라는 말은 오직 여기에만 나옵니다. 나머지는 다 ‘권한’입니다. 여기 모인 권력자 여러분들 환영합니다!”(방송인 김제동) “그동안 미국이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전형으로 여겨왔고, 한국이 민주화를 이룬 지 불과 30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경이로운 진보다.”(미국 ) “이제 곧 저는 살아오는 종철이를 만날 것입니다. 시퍼렇게 되살아오는 민주주의를 만날 것입니다. 저는 종철이를 부둥켜안고 고맙다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다시는 쓰러지지도 말자고 말할 것입니다.”(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그리고, 그. “너무나 많은 왜곡, 허위가 남발되고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세월호 문제인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대통령으로서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박근혜)
글쓴이는 촛불혁명을 이렇게 말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공정사회’와 ‘분배 복지’에 대한 열망이 아닌가. 더 근원적으로는 고도성장의 경제구조 위에 작동되던 정치 사회 체제, 삶의 양식, 가치관과 내면 그 모든 것에 대한 혁명적 변화의 요구가 아닌가. (…) 촛불혁명은 대통령 하나 쫓아내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와 일상 구석구석에 뿌리박은 독점권력과 부정부패의 구조를 갈아엎고자 한 것이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 1순위가 ‘적폐청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분노의 뿌리인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결해나가는 첫걸음, 그로부터 우리는 혁명의 목적지인 좋은 삶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가는 것이다.”
참된 책은 요약 불가능하다. 요약 불가능한 지난겨울 한반도 남쪽의 빛을 기록한 민주주의 사전 을 두고두고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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