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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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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넘어 지민(知民)으로

대통령과 내가 연대하는 길 <대통령의 책 읽기>
등록 2017-10-31 17:42 수정 2020-05-03 04:28

문(文)은 본디 문(紋·무늬)이다. 대하소설 의 작가 최명희가 ‘모국어는 정신의 지문’이라 한 말이 이를 잘 드러낸다. 글은 무늬이므로, 기억이고 기록이며 시간이다. 시간의 축적이 글을 빚고 대하를 이뤄 역사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글은 곧 형성이다. 인간의 형성 의지가 글을 낳고, 글을 읽으며 형성 의지가 피어난다. 하여 글을 담은 그릇인 책은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인간 의지의 가장 압축적 형태이며, 책 읽기는 거기에 다가가려는 인간 의지의 가장 압축적인 행위이다. 책(冊)은 글자 모양에서도 보이는바, 대나무 조각을 잘라 이은 죽간을 시원의 하나로 삼는다. 요컨대 책 읽기는 세계 형성의 의지를 지닌 인간들의 가장 압축적인 ‘연대’(어깨 겯기)를 상징한다.

(휴머니스트 펴냄)는 ‘대통령에게 권하고 시민이 함께 읽는 책 읽기 프로젝트’를 내세운다. ‘촛불혁명’ 1년을 맞아 내놓은 기획이다. 세상에 이름난 이들 26명이 저마다 책을 추천했다. 한 권은 길게, 두 권은 짧게 소개했다. 모두 더하면 78권이다. 중국 고대의 (맹자)에서 근래 입소문을 탄 (유발 하라리)까지 동서고금을 아우른다. 한국인이 저자인 책이 27권이고, 외국 서적이 51권이다.

책을 묶어낸 이들은 이제 지민(知民)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시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를. 이미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과정에서 ‘국민’(國民)에서 ‘민중’(民衆)으로, 다시 ‘시민’(市民)으로 거듭난 우리는 시대가 마주한 문제들을 정확히 알고 공유하며 그 해결 방안을 토론하면서 찾아나가는 ‘실천하는 지민(知民)’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지은이들이 추천하고 인용한 책에는 지금 현실에 바투 다가가도록 하는 대목이 여럿 읽힌다.

전쟁, 그리고 여성. “전쟁터에서 제일 끔찍한 게 뭐냐고, 지금 묻는 거야? …‘죽음’이라는 대답을 기대하겠지. 죽는 거라고. …전쟁터에서 제일 끔찍했던 건, 남자 팬티를 나르는 일이었어. …글쎄 우선 꼴이 웃겼다고 할까. …전쟁터까지 와놓고 남자 팬티나 나르다니.”(,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탈핵, 그리고 생명. “전 지구적 의사소통 기구를 포함하는 인간의 문명을 바탕으로 그 위에 집합적 의미의 인간 의식이 형성되어온 생명을 하나의 유기적 단위로 인식하게 될 때, 명실상부한 온생명의 자의식이 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회익) 가난, 그리고 반복. “달동네가 사라졌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돌고, 돌고, 또 돌고 계속 그 자리만 머물게 되고… 꿈이 있어야 하는데….”(, 조은) 자본주의, 그리고 관점. “자본주의는 다수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 안에 가두어놓음으로써 그 생명을 이어나간다.”(, 존 버거)

지은이들은 말한다. ‘대통령과 시민/ 지민이 함께 새 세상을 형성하자, 더불어 책을 읽으며.’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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