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출장이 끝나자마자 계획에도 없던 여름휴가를 썼다. 또다시 ‘독박육아’를 뒤집어쓴 아내에게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어서다. 휴가 목표는 단 하나, 육아다. 강원도 양양이라도 가볼까 싶었는데 목을 완벽히 가누지 못하는 도담이가 고생할 게 뻔해 XYZ 기자의 바캉스 기사(제1172호 특집1 ‘어쩌다 양양 에라 바캉스’ 참조)나 읽으며 기분만 내기로 했다.
휴가 동안 아내와 함께 정한 규칙은 간단하다. 외출이나 모유 수유처럼 아내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가 집에 없다고 가정한 ‘셀프 독박육아’다. 그간 고생한 아내에게 휴식을 주려는 목적도 크지만, 그보다는 육아·가사 병행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보자는 생각에 더 가까웠다.
첫날은 예상대로 허둥지둥했다. 아내 대신 침대에서 도담이 옆자리를 차지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도담이의 옹알이에 잠에서 깬 뒤 비몽사몽으로 도담이와 놀아주다가 칭얼거리면 유모차에 태워 ‘빠방’(우리 부부와 도담이 사이에 통용되는 ‘외출’의 다른 말)하러 나간다. 그 사이에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동네를 한 바퀴 뺑 돈 뒤 집에 들어와 아침 식사를 차린다. 이후 청소, 빨래, 설거지, 낮잠 재우기, 빠방을 차례로 반복하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도담이를 씻긴 뒤 재우면 비로소 하루가 끝난다. 단순 반복되는 일이 전부인데 취재하고 마감하는 것보다 곱절 이상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고, 노동량도 만만찮다. 아이를 재운 뒤 영화를 보거나 독서·게임 같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다음날 새벽 일어나기 위해 잠자리에 일찍 들기 바빴다. 휴가 닷새째, 내 일상은 도담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육아휴직은 언제 쓸 거야?”
지난달, 아내는 육아가 너무 힘드니 여름에 육아휴직이라도 써서 가사를 분담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회사에 문의해보니 조직과 잘 상의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된단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 명이 빠지면 나머지 기자들의 업무가 가중되는 현재의 취재팀 조직에서 1년씩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단순히 동료들의 양해를 구할 일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동료들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회사가 누구에게도 피해 없이 시스템적인 대안이나 장치를 적극 마련하는 게 중요한데, 내 고민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도담이를 잘 키우려면 나와 아내 모두 육아와 가사에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셀프 독박육아가 닷새 남았다. 지난 닷새 동안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많은 직관이 필요한 일인지 절감했다. 매 순간 경험하지 않은 일이 펼쳐졌고 그때마다 행동을 결정해야 했다. 어떻게 할지 모르는 순간이 부지기수라 규칙을 어기고 아내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아내가 준 점수는 B-. “독박육아치고는 너무 의존적이야”라는 ‘한줄평’과 함께. 남은 닷새 동안 A를 목표로 정진!
김성훈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내란 세력 선동 맞서 민주주의 지키자”…20만 시민 다시 광장에
‘내란 옹호’ 영 김 미 하원의원에 “전광훈 목사와 관계 밝혀라”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청소년들도 국힘 해체 시위 “백골단 사태에 나치 친위대 떠올라”
‘적반하장’ 권성동 “한남동서 유혈 충돌하면 민주당 책임”
‘엄마가 무서웠던 엄마’의 육아 좌절…문제는 너무 높은 자기이상 [.txt]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윤석열 지지자들 “좌파에 다 넘어가” “반국가세력 역내란”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