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딱 두 달 걸렸다.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 누구는 1~2주 만에도 만든다지만, 원고는커녕 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 어떤 야근이나 초과노동도 없이 두 달 만에 책을 낸 건 나름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는 2008년 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즈음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새 정부에 뭔가 어깃장을 놓고 싶었다. 그래서 “원래 실용주의는 그런 거 아니거든?”이란 말을 해줄 사람을 찾았고(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 중 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분께 빨리 이런 책을 써달라고 전자우편을 보냈다. 한 달 만에 정확히 내가 받고 싶은 글을 받았고, 살림지식총서 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아주 가끔씩 합이 탁탁 맞아서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즐기며 일하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있는데 바로 그 경우였다. 물론 이는 간략한 원고 청탁 메일만 보고도 완벽한 원고를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건네주신 저자가 계셨기에 가능했다. 그분의 이름은 이유선. 이번 칼럼에선 이분의 책 (라티오 펴냄)를 소개하려 한다.
미국의 대표적 철학자 리처드 로티에게 직접 지도를 받고 돌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로티 전공자. 로티의 저작과 또 다른 미국의 대표 철학자 존 듀이의 주요 저작 번역. 관련자들 사이에선 명성이 자자하겠지만 “로티? 그게 뭐야?” 물을 수밖에 없는 보통의 우리에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행히 로티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 있으니 바로 다. 부제는 ‘우연적 삶에 관한 문학과 철학의 대화’. 일상에서 철학적 개념을 찾아내고 이것이 잘 드러난 문학작품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한 꼭지 한 꼭지 꾸려나가는 책이다. 예를 들어 박민규의 과 존 롤스의 를 엮어 ‘진짜 인생’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것을 짚어보는 식이다.
저자는 같은 문학작품을 탐독하다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막상 이들이 철학에 입문해서는 무척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한 진리를 추구한 플라톤 이래 철학자들 탓이 크다고 한다. 그 세계에선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인생의 고민, 창녀 소냐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통 등은 사라지고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란 무엇인가’ 하는 차가운 정의만 남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은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궁극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며 “문학은 그런 일들을 잘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철학과 문학의 경계에 서서 이런 책을 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추상적이고 차가운 철학에 실망했다면, 이 책을 통해 ‘삶의 우연성, 구체성, 유한성’을 끌어안은 살아 있는 철학을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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