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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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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용감해

아깽이 6마리 키운 여울이의 눈물 나는 ‘육묘 일기’
등록 2017-06-08 20:36 수정 2020-05-03 04:28
여울이가 새끼 고양이들에게 먹일 꽁치구이를 물고 경쾌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용한

여울이가 새끼 고양이들에게 먹일 꽁치구이를 물고 경쾌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용한

‘여울이’라 이름 붙인 고양이가 있었다.

‘무늬고등어’(온몸에 고등어처럼 청회색 무늬가 있고 입 주변에 짜장이 묻은 것처럼 검은 무늬가 있는 고양이를 이르는 애묘인들의 용어)인 귀여운 외모의 고양이다. 늦봄에 여울이는 새끼 6마리를 낳았다. 이 사실을 안 이웃 마을의 캣맘은 지극정성으로 육묘 중인 녀석을 보살폈다. 사료 말고도 닭백숙에 생선도 구워 주고 갖은 영양식을 만들어 바쳤다. 사실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급식소에 들러 캔 간식이나 챙겨주고 더러 사진을 찍는 게 전부였다.

하루는 캣맘이 어미고양이의 몸보신을 위해 꽁치 2마리를 구워 내놓았다. 꽁치 굽는 냄새가 나자 진즉에 여울이는 부엌 밖에서 군침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 녀석 정작 캣맘이 내놓은 꽁치를 보자 먹지는 않고 한 덩이 덥석 물고는 사뿐사뿐 발걸음도 가볍게 어디론가 향했다. 급식소 뒤편에 자리한 빈집의 헛간채 쪽이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걷는 여울이의 입에선 갓 구운 꽁치가 달랑거렸다. 이윽고 녀석이 헛간채에 이르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아깽이(아기고양이) 6마리가 마당이 떠나갈 듯 삐악거리며 어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고는 미처 내려놓을 새도 없이 아깽이들이 어미가 물고 온 꽁치를 낚아채 아귀다툼을 벌였다. 어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빈집 대문을 빠져나와 캣맘네 부엌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녀석이 꽁치 꼬리 쪽을 물고 나타났다. 역시 발걸음은 경쾌했고, 거침이 없었다. 새끼들 먹일 마음에 살짝 달뜬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오는 듯했다. 당연한 어미 고양이의 모성애로 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짠한 모습이었다. 자기도 먹고 싶어서 속으로 얼마나 군침을 삼켰을까. 여울이가 입에 문 꽁치를 내려놓자 또 한바탕 헛간 앞에선 왁자하게 먹이 다툼이 벌어졌다. 쉴 새도 없이 여울이는 또다시 급식소로 향했고, 네 번의 왕복으로 꽁치 배달이 끝났다. 하지만 여울이의 배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튀김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고구마튀김을 부엌에서 물고 나왔다.

그때였다. 바로 옆집 옻닭백숙을 파는 식당에서 목줄이 풀린 커다란 개가 여울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마 녀석은 여울이가 입에 문 고구마튀김을 노리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개의 공격에 명랑하게 룰루랄라 걸어가던 여울이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도 녀석은 입에 문 것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어금니까지 꽉 물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 말고 내가 발을 쿵쿵 굴러 개를 쫓아보았지만, 녀석은 막무가내로 날뛰었다. 개가 너무 커서 내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다행히 여울이는 빈집 대문 밑으로 들어가 용케 개를 따돌렸다. 상황도 모르고 아깽이들은 ‘앙냥냥’ 하며 또다시 모여들었다. 큰 고구마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울이는 지쳐서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고, 아랑곳없이 아깽이들은 맛난 식사였다며 저마다 비린내 나는 그루밍을 시작했다.

에고, 어미 노릇 하기 정말 힘들구나. 새끼에겐 힘든 티도 못 내고, 맛난 것이 있어도 맘껏 먹을 수도 없구나. 그렇다고 이 녀석들이 자라서 제 어미에게 맛난 거 한입 물어다주지도 않을 텐데…. 어미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구나.

여울이를 보살피던 캣맘에 따르면 아깽이 육묘를 거의 마친 그해 가을, 여울이는 이웃집 옻닭식당 주인이 놓은 쥐약을 먹고 고양이별로 떠났다고 한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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