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고양이 숲에 사륵사륵 눈 밟는 소리가 그득하다. 이용한 제공
겨울 고양이 숲은 적막하다. 눈 내린 고양이 숲은 더더욱. 이 고양이 숲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동네 역전 고양이들의 비밀 휴게소이자 은밀한 놀이터이다. 왠지 여기서는 고양이가 주인이고 사람이 객이 된다. 그래서 이곳은 고양이만의 복된 영역이며 고양이의 행복지수가 조금은 나을 거라는 생각이 마구 든다.
하필 고양이 숲은 역전 주택가 사이에 섬처럼 존재한다. 지구의 한 귀퉁이, 인간 마을 한구석에 간신히 존재하는 고양이 숲.
본래 이 숲은 두충차를 재배하기 위해 누군가 조림한 두충나무 숲이다. 누구든 숲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고양이가 있다는 것을 알 테지만, 누구도 부러 그곳에 들어가 간섭하지 않는다. 나 또한 사료 배달을 하고 잠시 사진을 찍고는 서둘러 빠져나온다. 내가 아는 한 역전 고양이는 지난해 가을부터 부쩍 이 숲에 출입이 잦았다. 그들이 머물던 도로 옆 텃밭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이어서 맘 편히 쉬거나 놀 수 없었다. 녀석들이 안전한 곳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이 고양이 숲이 되었고, 역전 고양이는 숲 고양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점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고양이에게 사료 주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도 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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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양이 숲은 폭설에 잠겨 분위기가 제법 그윽하다. 눈이 내려도 고양이들은 좀처럼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저렇게 눈이 내려도 어떤 고양이는 숲 이쪽에서 저쪽까지 ‘우다닥’ 뛰고, 어떤 녀석은 잎이 다 진 덤불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이 숲에서는 고양이가 아무리 날뛰어도 괜찮다. 한 녀석은 두충나무 밑동에 다소곳이 앉아서 하염없이 눈을 맞고 있다. 또 다른 녀석은 툭하면 내리는 폭설이 원망스러운지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난분분히 눈발 날리는 하늘. 고양이의 호박색 눈 속에도 어지럽게 눈발이 흩어진다.
이 숲만큼은 오롯이 고양이가 주인이다. 놀다 쉬고, 자고 우다닥이 끝나면 사색을 즐겨도 좋다. 고양이가 고양이로서의 본능에 충실해도 괜찮은 숲.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더러 쉬었다 가는 곳. 사람들의 무관심이 도리어 고양이를 지켜주는 곳. 숲에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사륵사륵 고양이의 눈 밟는 소리가 들리고, 어지럽게 눈밭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볼 수 있다.
눈 내린 고양이 숲과 숲 고양이는 그지없이 적막하고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더없이 막막하고 정처 없어 보인다. 폭설 속의 고양이는 내 눈에만 낭만적일 뿐, 정작 동물 자신에겐 혹독하고 잔인한 현실일 것이다. 녀석들은 그것을 벗어나려 이따금 근처의 논과 밭을 떠돌고 사람이 사는 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자동차 경적 소리에 놀라 다시금 고양이 숲으로 피난 온다. 역전 고양이가 고양이 숲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어디를 가도 이만한 곳을 만날 수 없으니까.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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