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한창일 때 한 절집을 찾았다. 남쪽이어서 아직 단풍은 일렀지만,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제법 가을물이 들었고, 경내의 코스모스는 만개해 청명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렸다. 천천히 경내를 돌아 칠성각에 이르러 산벚나무 아래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쉴 때였다.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고양이 소리가 불경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그 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와 허공에서 흩어지는 듯했다.
절집에 오니 환청이 들리는구나! 그때였다. 다리쉼을 하던 산벚나무 위에서 노랑이 한 마리가 풀쩍 내 앞에 뛰어내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녀석과 살짝 눈을 맞추는데, 이 녀석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 ‘냐앙’ 하며 무언가를 요구했다. 제법 당당한 태도였고,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나는 주변 눈치를 살폈다. 마침 칠성각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길목에 공양단이 보였다. 이미 누군가 뭇 생명을 위해 과일이며 떡을 잔뜩 올려놓았다. 절집에 찾아온 배고픈 고양이에게 사료 공양 정도는 부처님도 이해하시겠지. 가방에서 비상용 샘플 사료 한 봉지를 꺼내 소각장 옆에 내려놓는데, 눈치도 없이 노랑이가 어찌나 큰소리로 ‘이야옹’ 하며 고마움을 표시하던지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몰려나왔다. 모두 여섯 마리인데, 절집 고양이라서 그런지 녀석들은 한 움큼밖에 안 되는 사료를 아무 다툼 없이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절엔 날마다 산에 올라 절집 고양이에게 사료 공양을 하는 ‘캣맘’이 있었다. 이곳의 몇몇 고양이는 누군가 일부러 버리고 간 유기묘였다. 누구는 버리고, 누구는 버린 고양이를 챙겨 먹이고. 어쩐지 경내에 샴고양이도 있어 의아스러웠는데,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사료를 다 먹은 노랑이와 카오스는 이제 밥값으로 길안내라도 해주겠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안내자 노릇을 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당도한 조사전에선 단청이 멋진 법당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녀석들이 번갈아 모델 자세를 해주었다. 고양이와 단청과 파란 하늘이 어울린 사진은 그야말로 절묘했다. 나중에 이 사진은 한 일본 잡지에 실린 ‘한국의 고양이들’이란 기사와 함께 표지 사진으로도 선정됐다.
오래전 라오스를 여행할 때, 내가 들른 사원마다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던 스님들이 떠오른다. 라오스에선 사원마다 새벽 딱밧(탁발)이 끝나면 절집에 찾아온 가난한 사람들과 경내의 개와 고양이에게 두루 아침 공양을 하는 게 일상의 풍경이었다. 터키에서 잠시 머문 숙소의 매니저가 했던 말도 생각난다. 고양이는 어디에나 있지만, 더 많은 고양이를 만나려면 모스크에 가보라던. 그의 말대로 터키에는 모스크마다 고양이 급식소가 있었고,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경내를 돌아다녔다. 그 모습이 마냥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길안내를 맡은 두 고양이는 이제 조사전 앞마당에서 꾸벅꾸벅 졸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귓전에 내내 풍경 소리가 그윽하게 바람에 실려오는 어느 가을날이었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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