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그의 인생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여행 가서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난전에서 덥석 사들고 오기도 했다. 입어보지도 않고 사와 몸에 너무 작았고, 한번 빨았더니 날염이 번져 결국 버리고 말았지만…. 한때 ‘별다방’ 일회용 컵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팔리는 아이템인 체 게바라. 우리 집 고양이 ‘체’를 떠올리면 그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사실 고양이에게 ‘체’라고 이름을 지어줄 때는 혁명가의 길은 가지 못해도 그의 거침없는 용기만큼은 닮기 원했다. 거기에는 ‘부디 커서 훌륭하고 용감한 고양이가 되어라’ 하는 격려의 의미도 내포됐다. 그러나 체의 이미지는 체 게바라와 정반대였다. 녀석은 유난히 겁이 많아 바스락 소리에도 숨기 바쁘고, 다른 고양이에 비해 동작도 느렸다. 어린 시절 엄마 고양이가 하듯 장난 삼아 뒷목을 잡아올릴라치면 체는 체념한 듯 반항하지 않고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래도 그 모습과 표정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체는 궁서체 시옷(ㅅ) 모양의 입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를 지녔다. 외모로 보면 제 아빠를 쏙 빼닮아 거의 ‘아바타급’이다. 행동도 비슷하다. 약간 단순하고 먹을 것 밝히고, 툭하면 사고 치는 것까지. 아빠 고양이도 그런 체가 끌리는지 늘 곁에 체를 두는 편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격이다. 다행히(?) 체는 아빠 고양이보다 온순해서 발톱을 세우는 등 공격성은 별로 없다. 체가 몸집이 커지면서 점점 아빠 고양이와 혼동될 때가 있는데, 한번은 발밑을 지나가는 녀석을 무심코 들어올렸다가 허벅지에 보기 좋게 ‘영역표시’를 당한 적이 있다. 체와 체급이 비슷한 아빠 고양이였던 것이다.
겁이 많은 녀석은 우편집배원이나 택배 아저씨가 현관문을 두드릴 때마다(동네에서 우편물과 택배가 가장 많이 오는 집이라, 배달 아저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신다) 거의 넋이라도 있고 없고, 혼비백산해 꽁지가 빠져라 숨어버린다. 신속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게릴라 같기도 하지만, 다시 나타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동거인인 나를 보고도 꼬리를 엉덩이 사이에 넣고 슬금슬금 눈치 보기 바쁘다.
거칠고 험난한 전쟁터 같은 길고양이의 삶과 비교하자면, 고양이 세계의 지하대피소에 비할 만한 곳에 살면서도 저리 덜덜 떠니 산책이라도 했다가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게 불 보듯 뻔하다. 저래서야 혁명은커녕 연명도 쉽지 않을 듯하다. 고양이에게 체 게바라의 이름을 붙인 것도 미안한데, 하필 이름 붙이고 보니 이런 고양이라니, 체 게바라에게 이만저만 미안하지 않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라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다. 널리 알려진 ‘체 게바라’는 혁명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란다. 스페인말로 체(che)는 ‘야’ 혹은 ‘어이’ ‘이봐’처럼 사람이나 동물을 부를 때 쓰는 말이라고. 그러니까 고양이 체도 고양이 ‘어이’라는 뜻일 뿐이다. 체 게바라를 사랑하는 여러분 용서하길!
고양이 작가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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