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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스타일’ 만복이

족발집 고양이는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 진다
등록 2017-12-23 12:18 수정 2020-05-03 04:28
부산 곱창골목 거리의 터줏대감 만복이. 이용한

부산 곱창골목 거리의 터줏대감 만복이. 이용한

부산 시내 곱창골목이 끝나는 곳의 작은 족발집. 저녁이면 족발집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날 수 있다. 이름은 만복이. 녀석은 족발집이 문 여는 저녁 시간에 맞춰 어슬렁어슬렁 집 안에서 나온다. 집 앞에 앉아 그루밍(털 손질)도 하고, ‘발라당’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만복이 나왔네” 하면 “냐앙~” 하고 대답까지 한다. 이 골목에 사는 사람치고 만복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복이는 얼굴이 팔려 있다. 술 취한 아저씨도 “만복아!” 하고 지나가고, 짐 보따리를 안고 가는 아줌마도 “만복이 여기서 뭐해!” 하면서 지나간다. 그때마다 만복이는 꼬박꼬박 아는 체를 한다. 심지어 처음 보는 내가 다가가 “만복아!” 불러도 녀석은 넉살 좋게 “냐앙” 하고 대답한다.

녀석은 그야말로 부산 스타일,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고양이다. 이왕 나온 김에 녀석은 골목을 한 바퀴 순찰하고, 더러 자기 영역을 침범한 고양이를 멀찌감치 쫓아내기도 한다. 한번은 여기서 100여m 떨어진 잡화점에서 밥을 얻어먹는 길고양이가 이곳에서 어슬렁거리다 보기 좋게 쫓겨났다. 족발집 주인이 만복이에게 이제 그만 들어와라, 하면 녀석은 밤문화를 더 즐기려고 오히려 잡히지 않을 만큼 멀찍이 달아난다. 사실 만복이가 사는 곱창골목은 내가 가본 어떤 지역보다 고양이에 대한 인심과 인식이 좋았다.

잡화점에서도 길고양이를 위해 밥그릇을 내놓았고, 갈비와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 아줌마는 밤마다 사료 두 그릇을 트럭 아래 주고 있었다. 만복이네 집에서 50여m 떨어진 곱창집에서도 테이블 옆에 사료가 담긴 길고양이 밥그릇이 있었고, 지하 술집에서조차 입간판 옆에 사료 한 그릇, 물 한 그릇을 내놓고 있었다. 한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길고양이를 위해 밥을 내놓는 곳은 이제껏 본 적이 없다. 곱창골목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고양이가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여기는 식당이 많아, 쥐가 많았어요. 쥐가 곱창이나 음식 재료를 갉아먹으면 손해가 막심하죠. 그러다보니 식당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게 된 거예요. 밥 먹으러 고양이가 오니까, 쥐도 함께 사라지더라고요. 여기는 새벽에 음식 쓰레기도 많이 나오잖아요. 전에는 고양이가 그거 다 헤쳐놓았는데, 밥을 주니까 그러지 않더라고요.” 이래저래 사람도 좋고 고양이도 좋은 상부상조, 공존공생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고양이와 무관한 일로 부산에서 사흘을 머물렀는데, 공교롭게도 숙소 앞이 만복이네 족발집이었고, 머무는 내내 아침저녁으로 만복이를 만났다.

하루는 이른 아침 숙소 앞에서 시끄럽게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만복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발라당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자정쯤 되면 족발집은 문을 닫음과 동시에 만복이를 불러 안으로 들이곤 했는데, 이 녀석 어제는 밤문화를 즐기느라 집에 못 들어간 게 분명했다. 어쩐지 어젯밤 술집 골목을 어슬렁거리더라니. 내가 만복이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말을 했더니, 앞집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하이고, 만복이 너 또 외박했구나?” 그런다. 사람과 고양이가 그저 식구이고 이웃처럼 어울려 사는 모습, 참 좋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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