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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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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야 꽉 잡아!”

벼랑 끝에 몰리면 고양이도 손을 잡아주건만…
등록 2018-01-30 18:12 수정 2020-05-03 04:28
재미가 벼랑에서 미끄러진 단짝 친구 꼬미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이용한

재미가 벼랑에서 미끄러진 단짝 친구 꼬미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이용한

몇 차례 폭설이 내리고 강추위가 이어지면서 밥 주던 고양이 중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해마다 겨울이면 반복되는 일이라 이젠 적응할 만도 한데 안 보이는 고양이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남은 고양이는 살아야 하니 밥 배달을 멈출 수 없다.

오래 운영해온 급식소 가운데 논두렁 급식소가 있다. 밥 주는 고양이들이 논과 하천 사이 하수구를 은신처로 삼다보니 자연스럽게 급식소도 하수구와 논 사이 논두렁이 되고 말았다. 이곳에는 세 마리가 사는데 삼색이 ‘대모’(어미고양이)와 노랑이 ‘재미’(대모의 아기고양이), 노랑이 ‘꼬미’(대모의 손자로 어미가 쥐약 먹고 세상을 뜨자 할머니가 데려와 키우고 있다)다.

꼬미와 재미는 한배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친형제보다 더 우애가 깊다. 그 우애가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 견해이긴 하지만…. 둘은 언제나 단짝으로 논 한가운데 쌓아놓은 짚더미나 논두렁, 급식소 위쪽의 장독대를 오가며 놀았다. 한번은 논두렁 급식소에서 밥 먹은 재미와 꼬미가 장독대 앞 은행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재미가 먼저 은행나무 밑동을 타고 오르더니 제법 높이 올라갔다. 그러자 밑에서 구경만 하던 꼬미가 덩달아 나무를 타고 올랐다. 둘은 한참 나무 위에서 곡예하듯 장난치고, 엎치락뒤치락 티격태격 나무타기 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하필 두 녀석이 노는 곳이 은행나무에서 논도랑으로 뚝 떨어지는 벼랑 끝이었다. 물론 벼랑이라 해봐야 사람 키보다 약간 높은 2m 정도에 불과해서 떨어진다고 크게 다칠 리야 없겠지만 둘은 아슬아슬 위험을 즐겼다. 벼랑 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 나무 위로 뛰어오르고, 다시금 뛰어내려 벼랑 위를 달리는 놀이를 녀석들은 지겹도록 반복했다. 그러다 아뿔싸! 꼬미가 재미가 휘두른 앞발을 피한다는 것이 발을 헛디뎌 벼랑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짧은 순간 재미가 미끄러지는 꼬미에게 손(앞발)을 내밀었다. 꼬미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재미의 손을 꽉 잡았다. 이건 무슨 히말라야 빙벽을 오르는 등반가의 우정을 그린 영화도 아니고. 거기서 떨어진다고 다칠 리도 없는데, 뭐 저렇게까지 구경꾼의 동정심을 유발하는지.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꼬미는 재미의 손에 의지해 가까스로 벼랑에서 탈출했다.

순간 나는 정말 고양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조난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벼랑에서 미끄러진다고 손 잡아주는 고양이라니! 아주 짧은 시간, 거의 1~2초에 불과했지만, 렌즈로 그 모습을 본 나는 공연히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이 장면은 꽤 오래 가슴에 남았다. 맑은 하늘에선 어느새 시커멓게 눈구름이 몰려와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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