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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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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먹고 자란 외눈 고양이

타이베이 뒷골목 사람들의 따뜻한 고양이 사랑
등록 2018-06-12 16:42 수정 2020-05-03 04:28
이용한 제공

이용한 제공

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만 타이베이 화시제 한복판에서 검은 고양이를 만났다. 나와 눈을 맞추고 녀석은 “냐앙~” 하고 길게 운다. 가만 보니 한쪽 눈이 없다. 나를 올려다보는 슬픈 눈의 고양이. 배가 고파서 그런가? 나는 냥냥거리는 녀석을 거리에 두고 30m쯤 위 포장마차에서 꼬치어묵을 하나 사왔다. 이 녀석 도망도 안 가고 그 자리에 그냥 있다. 적당한 크기로 어묵을 잘라 녀석에게 내밀었지만, 녀석은 먹을 생각이 없다. 대신에 내 다리를 비비며 놀아달란다. 연신 고개를 들이밀어 내 허벅지와 다리에 부비부비를 하는 고양이. 한쪽 눈이 없는 외눈 고양이.

아까부터 나와 고양이를 지켜보던 노점상이 뭐라 뭐라 나에게 한마디 한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얘기 같았다. 저 아래 이 녀석을 돌보는 캣맘이 따로 있다. 그분이 밥을 주니, 밥 대신 고양이랑 놀아주고 가시라. 바쁠 것도 없고 어디 가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한참이나 녀석을 쓰다듬으며 놀았다. 이렇게나 사람을 좋아하는 걸 보면,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해 눈이 저렇게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녀석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오가며 잠시 쪼그려 앉아 녀석을 쓰다듬었다. 그때마다 녀석은 “가릉가릉” “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배보다 사랑이 고픈 외눈 고양이. 한쪽 눈이 없지만, 이렇게 너는 놀기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구나! 마음이 다치지 않아서 좋구나! 얼마 뒤 어느 골목에선가 녀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녀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뒤도 안 보고 소리 나는 골목으로 달려갔다. 따로 있다는 캣맘인 모양이었다. 녀석이 달려간 골목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는데, 소리도 없고 자취도 없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골목 깊숙이 들어가봤다. 화시제의 어두운 뒷골목. 50여m 걸어가자 차 위에 고양이 두 마리(삼색이와 고등어), 차 아래 한 마리(고등어)가 앉아서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고 있다.

낡은 건물의 눈썹지붕 위에도 고양이 두 마리가 뒤엉켜 낮잠을 자고 있다. 올드타운 골목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고양이들. 어라, 몇 발자국 더 걸어가니 집 앞 탁자 위에도 두 마리가 있다. 턱시도와 고등어. 고등어 녀석은 철창에 갇혀 있었다.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고양이가 아파서 잠시 격리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안에서 아주머니가 돼지인지 오리인지 모를 고기를 들고 나와 손으로 잘라 탁자 위 고양이들 에게 먹였다. 살짝 고개를 돌려 집 안을 살펴보니, 마당 한쪽에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밥을 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아까 내가 한참을 놀아준 그 외눈 고양이였다.

이 아주머니가 바로 외눈 고양이를 돌본다는 캣맘이었다. 지구의 여느 뒷골목마다 이렇게 고양이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있고, 그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사람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갑자기 언젠가 주워들은 아프리카 격언이 생각났다. “수많은 작은 곳의 수많은 작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작은 일을 하고 있다.”

고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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