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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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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이’에게 온기를…

길고양이의 혹독한 겨울나기가 시작됐다
등록 2018-01-13 05:54 수정 2020-05-03 04:28
폭설을 헤치며 먹이를 구하는 고양이. 이용한

폭설을 헤치며 먹이를 구하는 고양이. 이용한

겨울은 길고양이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길고양이가 먹을 만한 모든 것이 얼어붙고 눈에 묻힌다. 마실 물이 없어 녀석들은 눈과 얼음을 녹여 먹거나 꽝꽝 언 음식물 앞에서 군침만 삼킨다. 무엇보다 길고양이를 힘들 게 하는 것은 한파다. 강추위 속에 한뎃잠을 잔다고 생각해보라. 집도 이불도 없이 더러는 바람벽도 없이 오로지 온몸으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게 길고양이의 현실이다. 그렇게 견뎌서 무사히 겨울을 나는 것, 그것만이 길고양이의 절박한 바람이다.

조금은 덜 춥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려는 길고양이의 행동은 언제나 눈물겹다. 대부분의 길고양이는 볕이 잘 드는 양지를 찾아 해바라기를 하는 것으로 추위를 달랜다. 어떤 고양이는 누군가 내다버린 이불로 몸을 덥히거나 바닥이 넓은 스티로폼을 이부자리로 삼는다. 이도 저도 구할 수 없으면 길고양이는 그저 서로 몸을 맞대어 체온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 한번은 컨테이너 공터에서 고양이 여섯 마리가 한 덩어리로 얽히고설켜서 잠자는 것을 본 적 있다. 이때 어미고양이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는 구실을 했다.

도심과 달리 시골에선 종종 불을 때고 난 뒤의 아궁이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녀석들도 있다. 숯가마에서 숯을 꺼낸 뒤 찜질방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온기가 오래 남아 있는 아궁이에 들어가 추위를 달래는 것이다. 당연히 녀석들은 재와 그을음으로 시커먼 몰골이 된다. 비록 외모가 꾀죄죄해져도 겨울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게 급선무다.

그다음으로 길고양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폭설이다. 큰눈이 내리면 대부분의 길고양이는 은신처에 틀어박혀 하늘을 원망하는 처지가 된다. 간혹 엄청난 폭설에도 눈밭 원정을 나서는 고양이가 있다. 너무 배고픈 나머지 눈을 뚫고서라도 먹이활동에 나서는 거다. 먹을 게 부족한 겨울이면 길고양이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이로 삼는다. 버려진 시래기, 언 늙은호박, 맵고 짠 김치, 심지어 고춧가루 양념 범벅인 총각무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고양이도 있다.

드물게 눈을 즐기는 녀석도 있긴 하다. 나와 친분이 가장 두터웠던 ‘봉달이’는 특이하게 눈밭 달리기를 즐겼다. 거의 무릎까지 쌓인 눈밭에서도 녀석은 수영하듯 눈밭을 내달렸다. 한참 눈밭을 달리고 나면 어김없이 녀석은 ‘눈고양이’가 돼 있었다.

고양이가 대체로 폭설을 싫어하는 이유는 체온 유지 때문이다. 한겨울 눈을 맞은 고양이는 젖은 털을 말리기가 쉽지 않다. 젖은 털을 그냥 방치했다가는 ‘헤르페스’라는 호흡기 질병에 걸리거나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폭설 속에 며칠씩 먹이를 구하지 못한 고양이도 면역력과 체온이 떨어져 죽기 십상이다. 한겨울 고양이에게 아사와 동사는 같은 말이다. 먹은 게 없으니 체온이 떨어지고, 결국 얼어죽고 마는 것이다. 겨울 고양이에게 사료 한 줌,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이용한 고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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