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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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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당신에게

커트 보니것의 졸업식 축사 모은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등록 2017-02-22 22:30 수정 2020-05-03 04:28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리카 무전여행도 취업 시장에서 ‘스펙’으로 쳐줄까 말까 한 시대.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는 방송인 유병재의 일갈이 더 와닿는 당신이라면 이 책과 주파수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커트 보니것의 대학 졸업식 연설문과 문학상 시상식 연설문, 칼럼 등을 모은 (김용욱 옮김, 문학동네 펴냄) 이야기다.

풍자와 위로, 유머가 버무려진 ‘사이다’ 발언이 그득하다. “요즈음 청년들에 대해 패기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 저희 세대가 언제나 원기 왕성한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증오입니다. 제게는 히틀러부터 닉슨에 이르기까지 평생 동안 증오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 만약 여러분이 우쭐한 기분을 느끼고 싶고, 쉬지 않고 100마일을 달릴 수 있을 것처럼 느끼고 싶다면, 증오하세요. 희석하지 않은 코카인보다 더 강력합니다. 히틀러는 전쟁에서 지고 파산해서 굶어 죽을 뻔한 나라를 오직 증오만으로 부활시켰습니다.” “끔찍하고 엉망진창인 이 행성의 상태에 대해 사과합니다. 그러나 여긴 언제나 엉망이었죠. ‘좋았던 옛날’은 존재한 적 없습니다. 그냥 날들만 있었습니다.”

보니것은 “나이와 지위라는 안전지대에 숨어서” 젊은이와 약자를 착취하는 정치인·자본가를 경멸하고 지구 파괴에 앞장서는 인간 존재를 회의했다. 그런 그에게도 나름의 ‘처방전’은 있다. 삶의 지루함과 외로움을 견디는 비결을 들려준다(“우리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지루함은 삶의 일부입니다. 그걸 견디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것은 블루스와 춤(음악과 예술), 확대가족과 공동체 가꾸기, 휴머니즘 실천, 그리고 농담이다.

“모든 좋은 농담의 도입부는 여러분을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 또한 농담은 아무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걸 바라지 않고, 여러분에게 훌륭한 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러분은 드디어 똑똑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안도감에 기뻐서 웃습니다.” 이미 보니것식 유머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독서 중에 몇 번이고 되뇔 것이다. 그래, 이 맛에 보니것 읽는 거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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