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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유할 도깨비는?

도깨비 연구자가 풀어쓴 정보서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
등록 2017-01-05 06:12 수정 2020-05-02 19:28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머니 그리고 귀신 보는 능력을 가진 인간 아이. tvN 드라마 의 주요 등장인물, 아니, 신(神)들의 면면이다. 이름만 보면 구전이나 동화책이나 교과서에서 접한 어렴풋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친숙하다. 동시에 낯설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원시인 복장, 머리에 솟은 뿔, 한 손에 든 가시 박힌 쇠방망이. ‘도깨비’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지만, 드라마 속 도깨비는 400만원대 명품 롱코트를 입는다. 가슴에 검이 꽂혀 있을 뿐 뿔도 방망이도 없다.

그런데 실은 기존 도깨비 이미지가 일본의 전통 요괴 ‘오니’를 오인한 것이고, 한국의 ‘진짜’ 도깨비가 따로 존재한다면? 김종대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펴낸 (인문서원 펴냄)은 ‘전래동화에 갇힌 전래의 신에 대한 17가지 짧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 교수는 1980년 중반부터 도깨비 연구를 해온 ‘도깨비 권위자’. 책은 한·중·일 3국의 역사서, 요괴민속학 연구를 바탕으로 도깨비를 둘러싼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전달한다. 예컨대 도깨비가 오니 이미지로 각인된 배경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전래 민담 ‘혹부리영감’을 조선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은 사건이 있다. 한자문화권 지역에서 ‘귀’(鬼)라는 동일한 문자로 다양한 신, 요괴들을 묘사해왔기에 서로 헷갈리기 쉬운 상황도 있다.

드라마는 도깨비 모티프에 작가의 상상력을 얹은 창작물이다. 책은 판타지와 전통을 잇는 ‘숨은 고리 찾기’에 나설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다. 드라마 속 도깨비는 메밀밭을 즐겨 찾는다. 인간 주인공과 처음 만날 때 메밀꽃다발을 건넨다. 김 교수가 책에 담은 전북 임실군 관촌면 구암리의 도깨비제 사진에는 메밀로 만든 팥 시루가 눈에 들어온다. 도깨비와 관련한 배고사, 도깨비고사, 화재 예방을 비는 도깨비제 등에서 메밀은 제상에 꼭 오른다고 한다. 도깨비에게 메밀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궁핍할 때 민중들이 먹는 음식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도깨비에 대한 신앙이 민중에 의해서 주도된 것임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도깨비는 한때 인간이었다. 고려시대 장군으로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그의 존재감을 시기한 어린 왕 때문에 죽는다. 백성들에겐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존재이지만 지배계층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역사 속 도깨비와 비슷한 면이 있다. 드라마에서 도깨비는 캐나다 퀘벡에 금싸라기 땅이 있다. 역사 속 도깨비는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거나 입신양명할 수 있도록 명당 자리를 정해주는 탁월한 지관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된다.

“술, 고기, 여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드라마 속 도깨비의 대사는 여성을 사물로 취급하는 ‘후진’ 여성관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사 속 도깨비는 남성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여성, 특히 남편을 떠나보낸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일화들을 남겼다. 도깨비와 상대하는 인물은 주로 하층민이며, 이들은 ‘벼락부자’가 된다. 김 교수는 도깨비 이야기들이 “현실적인 궁핍을 벗어나기 위한 장치로 도깨비를 활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938살 먹은 재벌 도깨비가 부모 없이 사고무탁인 가난한 19살 여고생과 사랑하는 드라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번 도깨비는 어떤 ‘집단기억’으로 남을까.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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