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기 위해 2층이던 벌통을 1층으로 축소하고 스티로폼 보온재를 벌통 끝에 넣어줬다. 최우리
“벌들한테 어서 일어나서 일하라고 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늦가을의 출근길, 식탁에 마주 앉은 어머니는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소녀처럼 웃으셨다. 돌 지난 손녀를 돌보느라 종종 몸이 아프신 어머니께 무농약 꿀 한 숟가락이 보약 같은 걸까. 지난여름 수확한 꿀을 다 먹어가는 것이 아쉬운 눈치셨다.
벌은 도시인과 달리 일과 휴식을 분리해 산다. 우주의 시간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고, 온 나라의 기운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를 소망하는 11월, 벌은 (부럽게도) 겨울잠을 자러 갈 준비를 한다. 그런 벌에게는 도시인이 베푸는 약간의 사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겨우내 배고프지 않도록 식량을 준비해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귀찮게 괴롭히지 않기 등이다.
3차 도심 집회가 있던 11월12일 아침, 월동준비를 하기로 했다. 지난 8개월 동안 드나든 서울 은평구 은평버스공영차고지 옆 아파트 공사장 뒤쪽 양봉장, 은은한 늦가을 햇살이 벌통을 비추고 있었다. 이날의 낮 최고기온은 16℃. 집회 참가하기만큼 벌의 월동준비를 돕기도 괜찮은 날씨였다.
뜨거웠던 여름 소란스럽게 윙윙거리던 벌들은 가을이 되면 차분해진다. 그늘이 드리워진 벌통의 벌은 이미 잠에 취한 듯 움직임이 고요했다. 어떤 벌통은 벌의 수가 크게 줄었다. 가을이면 말벌떼 습격과 전염병 창궐로 세력이 약해지는데다 계절 변화에 벌들이 충실하게 적응한 결과다.
때이른 한파가 다녀가서인지 벌통 안에서 얼어죽은 벌들도 눈에 띄었다. 벌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여왕벌을 중심으로 더 밀착해서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난다. 추울수록 부단히 날갯짓을 해 서로가 서로의 난로가 된다. 하지만 여왕벌을 잃어버렸거나, 여왕벌이 죽었거나, 그 수가 너무 적은 벌통의 벌들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동사하기 쉽다. 벌집에 머리를 묻은 채 죽은 벌의 뒷모습이 짠했다. 애초에 생명은 혼자서는 살 수 없도록 태어나는 것을…. 소통보다 고독을 택한 도시인은 괜히 슬펐다.
월동준비의 핵심은 벌통 규모를 줄이는 것이다. 봄여름에 여왕벌이 산란을 잘하고 꿀이 많이 들어온 건강한 벌통은 2~3층으로 벌통을 올리는데, 이제는 단층이면 된다. 단열을 위해서다. 2층에 있는 소비(벌이 집 짓는 나무틀)를 빼내 1층으로 옮기던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가 말했다. “우리도 좁은 집일수록 단열재가 덜 필요하잖아요. 벌통도 마찬가지예요.”
이어 ‘꿀3+벌5’ 법칙을 적용한다. 보통 소비 8~10장이 들어가면 벌통이 꽉 찬다. 우선 벌이 겨우내 에너지원으로 쓸 꿀이 찬 소비(일명 꿀장)가 3장 이상 필요하다(이게 모든 꿀을 수확할 수 없는 이유다). 꿀장은 소비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 5장을 채울 벌이 필요하다. 겨울잠을 자는 벌은 통 밖에 나가지만 않을 뿐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추위를 견뎌야 하기에 일단 최소한의 머릿수는 채워야 한다. 이 기준에 미달되는 벌통, 즉 이대로는 겨울을 날 수 없을 것 같은 벌은 다른 벌통의 벌과 합치기도 한다. 합봉이다.
축소를 마친 벌통 양 끝에 스티로폼 보온재를 넣어주고 두툼한 천을 벌통 위에 덮어줬다. 혹시 모르니 응애(꿀벌 진드기) 방지를 위해 옥살산 처리도 꼼꼼히 했다. 한 해 농사가 다 끝나간다. 기온이 더 떨어지는 12월 중순 외부 보온재만 덮어주면 된다. 벌들은 따뜻하게 겨울잠을 자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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