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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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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의 탄생

벌집 끝에 길게 매달린 ‘왕대’

새로운 여왕벌이 태어나는 방
등록 2017-06-03 16:31 수정 2020-05-03 04:28
봄에는 왕대도 많이 만들어지는데, 왕대에서 새 여왕벌이 태어날 조짐이 보이면 기존에 있던 여왕벌은 벌 무리를 데리고 꿀을 갖고 집을 나가버린다. 이런 분봉을 막는 게 양봉의 최우선 목표다. 새로 태어난 여왕벌은 진동을 내며 다른 왕대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여왕벌 번데기를 침으로 찔러 죽이고 벌통을 차지한다. 최우리 한겨레 기자

봄에는 왕대도 많이 만들어지는데, 왕대에서 새 여왕벌이 태어날 조짐이 보이면 기존에 있던 여왕벌은 벌 무리를 데리고 꿀을 갖고 집을 나가버린다. 이런 분봉을 막는 게 양봉의 최우선 목표다. 새로 태어난 여왕벌은 진동을 내며 다른 왕대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여왕벌 번데기를 침으로 찔러 죽이고 벌통을 차지한다. 최우리 한겨레 기자

황사와 미세먼지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5월 중순에 피는 아카시아꽃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밀원식물(꽃이 피는 식물)이다. 벌들도 부지런히 꿀을 모아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아카시아꿀을 만든다.

양봉을 할 때는 기록을 해야 한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노트와 펜을 들고 메모를 한다. 지금 벌과 벌통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음 내검 때 준비할 것을 잘 챙기기 위해서다. 내검 날짜와 벌통 안 벌집 수, 벌집 양쪽에 벌이 많이 붙은 벌집 수, 알이나 애벌레·번데기가 많은 벌집 수, 꿀이나 꽃가루가 든 먹이용 벌집 수, 여왕벌 유무, 산란 여부 그리고 ‘왕대’ 유무를 적는다.

왕대란 여왕벌이 태어나는 방이다. 다른 벌방과 확연하게 다르게 생겼다. 벌방 밖으로 길게 매달린 번데기방이 왕대다. 벌집 끝에 달린 왕대는 보통 벌의 세력이 커져 분봉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진다. 새로운 여왕벌을 태어나게 해 집을 떠나려는 것이다. 벌집 가운데에 왕대가 매달려 있으면 벌통에 이미 여왕벌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왕대가 생기는 건 벌들이 새로운 계획을 준비한다는 증거다.

여왕벌이 잘 있는 벌통에선 왕대를 없애야 한다. 변화를 막아야 한다. 왕대에서 새 여왕벌이 태어나 한집에 여왕벌이 둘이 되면 반드시 싸움이 난다. 여왕벌은 왕대 아래를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동그랗게 자르고 밖으로 나온다. 왕대를 봤을 때 아직 여왕벌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왕대 속 여왕벌을 죽이든가, 왕대를 잘 떼어내 여왕벌이 없는 다른 벌통에 옮기는 방법이 있다. 여왕벌이 없는 벌통에는 사람이 인공왕대를 만들어 여왕벌이 태어나게 할 수도 있다(고급 기술이다!).

여왕벌은 태어난 뒤 바로 비행을 떠난다. 이제 벌통에서 꿀만 축낸다고 구박받는 수벌이 나설 차례다. 태어난 지 6~8일 된 여왕벌과 수벌이 교미할 때 가장 좋다고 한다. 6일 미만의 어린 여왕벌은 교미하다 죽을 수도 있다. 10일이 지난 여왕벌은 질 산도가 변화해 교미해도 저장할 수 있는 수벌의 정자 양이 적어진다고 한다.

여왕벌과 수벌의 만남이 성공적이려면 당연히 유전적 다양성을 지닌 수벌이 많아야 한다. 양봉가들은 여왕벌의 탄생을 앞두고 수벌 수를 일부러 늘리기도 한다. 나는 평소 수벌방에 꿀벌의 기생인 ‘응애’가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수벌방을 없애는 편이다. 꿀만 먹는 수벌이 싫기도 하고, 크고 까만 수벌의 외모도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새 여왕벌의 교미를 위해서는 수벌이 꼭 필요하니 이때는 그대로 살려둔다. 수벌 수를 늘릴 때는 영양 섭취가 중요하니 설탕물이나 꽃가루 뭉친 것을 추가해주는 게 좋다.

여왕벌과 수벌의 교미는 어떻게 이뤄질까. 조도행씨가 쓴 을 보고 상상해본다. “여왕벌은 꽁무니에 수벌의 흰 성기를 달고 돌아와 요란한 소리를 낸다. 내검하니 수벌의 성기는 보이지 않고 머리카락보다 가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필자가 날개 2분의 1을 잘라주었다. 4일 후 보니 산란을 시작했다.” 참고로 여왕벌은 공중에서 여러 수벌과 교미한다. 많이 할수록 정자를 많이 저장하니, 많이 할수록 좋을 거다. 자신의 성기를 여왕벌에 빼앗긴 수벌은 교미 뒤 곧 죽는다. 교미 한번 하기 위해 태어난 수벌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이라 그만 상상하겠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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