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출근일에 만난 동료에게 나는 꿀을 선물했다. 한 해를 돌아보니 가장 잘한 일은 무농약 꿀을 수확한 거였다. 당신을 많이 좋아하고 응원한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꿀을 선물하는 것만큼 분명한 건 없었다. 정성을 선물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단호박샐러드 위에 뿌려진 꿀, 담백한 빵에 발라 먹는 꿀, 수제맥주에 탄 꿀,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꿀’찬 정성까지 꿀 하나만으로 이번 연말연시는 전보다 더 달달했다. ‘새해에도, 양봉 너는 내 운명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정유년 새해를 맞았다.
지난 칼럼에서 적었듯이, 벌에 쏘일 준비가 되었거나 혹은 나처럼 꿀의 유혹에 마음을 뺏겼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분투’를 해야 한다. 한 해 계획을 세우는 1월, 도시양봉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에도 적당하다. 벌이 곤히 겨울잠을 자는 동안 한 해를 살아갈 터전부터 골라야 한다.
벌을 치려면 볕이 잘 들고 근처에 꽃이 피는 숲이 있어야 한다. 꽃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꿀이 달라지니 몇 월에 어느 꽃이 많이 피는지도 알고 있다면 좋다. 벌이 날아다니기 편하게 장애물이 없으면 더 좋다. 숲까지 벌이 오가기 적당한 거리(반경 3~4km)인지도 가늠할 필요가 있다.
또 이웃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이웃과 사이가 아주 좋은지, 그곳에 벌통을 둘 경우 이웃이 놀라지는 않을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아직 국내에는 도시양봉 관련 조례나 법이 없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쉽지 않다.
분봉 또는 쏘임 사고라도 나면 이웃과 감정 상할 일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만약 주변에 농가가 있다면 농약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벌은 여기저기서 물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혹시 오염된 물을 마실 수 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로 빼곡한 도시에서 이 조건을 만족하는 공간을 찾기란 어렵다. 녹지 공간을 챙기지 못하고 팽창해온 도시가 많다. 한국에서 흔히 보는 4월의 벚꽃, 5월의 아카시아꽃, 7~8월의 밤꽃 등이 대표적 밀원식물(꽃이 피는 식물)이다. 소나무, 피나무 등도 벌이 좋아하는 소중한 도시 밀원식물이다. 하지만 벌과 사람이 함께 꽃을 즐기지 못하며 살고 있다. 도시양봉을 하면 숲과 나무, 꽃에 관심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환경운동가가 된다.
지난해에는 서울과 경기도 경계의 산 아래 텃밭에서 벌을 쳤는데, 갈 때마다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 여름부터 바로 옆 아파트 공사장의 땅파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니, 양봉장 가는 녹색의 오솔길이 대형 레미콘 차량이 다니는 누런 흙길로 변했다. ‘챙챙’ 하는 현장음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같이 양봉을 배운 도시인 중 몇 명은 주택 옥상과 집 근처 텃밭을 구해 벌통을 설치했지만, 그렇지 못한 도시인들은 쑥쑥 키가 자라는 아파트만 바라볼 뿐이다.
언 땅이 녹기 전, 설 전후로 양봉할 땅을 구해야 한다. 연말 서울 외곽 도시의 어느 공동묘지 주변 땅을 싸게 빌려 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양봉을 할 수 있는 새 터전으로 적당해 보였지만 계약이 어그러졌다. 발만 동동 구르다, 도시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에게 물었다.
“벌 키울 땅 찾기가 전셋집 구하는 일만큼 힘드네요.”
“네, 똑같아요. 녹지 부족도 있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로 갈 수 있는 접근성도 도시양봉에선 중요해요. 그래서 건물 옥상에서 많이 해요.”
돈이 없으면 지하나 옥상으로 간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는 세상, 도시양봉을 할 때도 건물주가 중요하다. 사람이나 벌이나 도시살이는 얼마나 힘들던가. (땅고르기 2편은 다음회에 이어집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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