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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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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똥은 죽음의 신호

양봉 최대 적은 전염병… 벌 움직임 이상하면 즉시 약물 처치해야
등록 2017-08-02 02:46 수정 2020-05-03 04:28
노제마병에 걸린 벌통. 갈색 똥의 흔적이 선명하다. 최우리

노제마병에 걸린 벌통. 갈색 똥의 흔적이 선명하다. 최우리

서양종인 양봉용 벌은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나기 어렵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호텔 옥상 양봉장에서 벌통 안 와글와글하는 벌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작은 무리로 겨울을 버티긴 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게 문제였다. 벌통을 열어보니 여기저기에 붓으로 갈색 물감을 뿌린 듯한 점들이 묻어 있었다. 벌들이 설사하는 병, 노제마병이었다.

“하아…, 어떻게 하죠?”

“전부 소각해야죠.”

“살아 있는 벌도요?”

함께 벌통을 나르던 선배 도시양봉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전염병은 안 걸리게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고, 초기에 발견했다면 일부를 빨리 제거하고, 넓게 퍼졌다면 다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다. 마치 암을 치료하는 외과의사 같은 판단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벌통의 벌들은 다른 벌통에 병을 옮기기 전에 빨리 소각해야 했다. 벌통과 병든 벌들은 빨간 불 속으로 사라졌다.

양봉하면서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전염병이다. 국내 토종벌의 전멸을 염려할 정도로 강력한 ‘낭충봉아부패병’(애벌레가 자라지 못하고 터져 죽음)은 아직 치료법이 없다. 벌통 하나가 감염되면 옆 농가의 벌통까지 소각해야 할 만큼 전염성이 강하다. 지난해 토종벌 농가의 상당수가 이 병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친 것은 양봉계에 널리 알려진 비극이다.

호텔 벌이 걸린 노제마병은 병을 일으키는 포자가 벌의 위에 들어가 증식하는 병이다. 당연히 배가 이상해진다. 건강한 벌의 위장은 담갈색인데 노제마병에 걸린 벌은 위장이 부풀어 있고 유백색이다. 위장 안에 있던 일부 포자는 배설물과 함께 밖으로 나와 다른 꿀벌에게 옮겨진다. 평소 노란 똥을 싸던 벌이 갈색 똥을 지저분하게 싸두었다면 노제마병을 의심해야 한다. 이 병에 걸린 벌은 행동이 둔해져 날지 못하고 벌통 앞을 느리게 기어다닌다. 한국에선 봄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꿀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에는 잠잠해진다. 다시 가을, 겨울에 약간 발생한다.

애벌레를 공격하는 병도 있다. 부저병이라고 하는데, 여왕벌이 낳은 애벌레에 병원균이 침투해 원래 흰색이던 애벌레가 갈색으로 변하며 물러터진다. 시큼한 냄새도 난다. 유럽 부저병과 미국 부저병이 있는데 서로 원인균은 다르지만 증상이나 전염 경로는 비슷하다.

부저병이 애벌레가 물러터져 죽는 병이라면, 애벌레가 딱딱하게 굳어 죽는 병도 있다. 백묵병은 곰팡이가 먹이와 함께 몸 안으로 들어가 장에서 균이 자라며 포자를 만든다. 유충의 사체는 처음엔 솜 같다가 점점 체액이 말라 백묵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주로 수벌 애벌레가 잘 걸린다. 이 병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벌통 출입구나 바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방과 빠른 치료가 중요하다. 병을 예방하려면, 오염된 기구의 사용과 오염된 꿀의 재사용(도봉 포함)을 피하고 장마철 벌통의 습도를 관리해 감염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다. 대부분의 전염병은 맞춤형 치료 약품이 있으니 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면 즉시 처치해야 한다. 양봉 농가에 연락하면, 해당 병의 치료 약물을 쉽게 살 수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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