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다는 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몇 해 전 국내 토종벌 농가의 90%를 싹쓸이했던 낭충봉아부패병(애벌레가 썩어서 죽는 병)은 양봉 농가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엄혹한 겨울과 전염병 탓에 한 해를 건강히 넘기는 여왕벌의 존재는 예전보다 더 귀해졌다.
벌과 수분(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 연구 전문가인 마크 윈스턴이 2016년 펴낸 (홍익출판사)는 제목만큼 무섭기만 한 책은 아니다. 벌과 인간의 역사, 예술작품 속 벌과 벌집, 벌을 직접 키운 저자가 느낀 벌과의 교감 등 벌과 관련된 따뜻한 내용이 많이 실렸다.
하지만 이런 제목이 붙은 이유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벌이 없어진다면 4년 안에 인류도 없어진다”고 말한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꽃에 앉아 있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여유롭게 자리를 비키는 벌들. 어떤 사람들은 벌을 만나면 깜짝 놀라 손사래부터 치지만, 벌은 중요한 일을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인간이 먹는 식량자원의 80~90%를 벌이 수정한다. 아몬드의 100%, 사과의 90%는 꿀벌이 수분을 해줘야 열매를 맺는다.
농가에선 이미 벌을 귀하게 모시고 있다. 사과밭에 꽃이 피는 4월, 사과 농가에선 양봉인들에게 벌통을 빌려 농장에 가져다둔다. 5월 비닐하우스 안에서 딸기, 수박, 참외 등을 재배할 때도 벌통을 들인다. 경남 함양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지인은 “사과는 참외처럼 식물 생장호르몬으로 수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수분해줄 벌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벌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으니 사과꽃가루를 90만원어치 사서 7일 정도 인공수정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벌이 줄어들면, 벌이 하는 일을 인간 노동력으로 대신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토종벌의 수분에 맞춰 진화해온 자생식물은 벌이 없으면 번식이 불가능해진다. 생물종의 연쇄 종말을 부를지도 모른다.
외국에선 이미 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2006년 미국에서는 최대 40%의 벌통이 붕괴된 적이 있다. 밖으로 나간 일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꿀벌의 소멸 현상에 대해 꿀벌에 기생하는 응애, 전자파, 농약, 고압선, 태양 흑점의 변화까지 여러 이유를 제시하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가을의 청량한 하늘은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잠시 쉬어가라고 자연이 주는 선물 같다. 김장 배추가 있는 텃밭으로, 조경용 국화가 핀 공원으로 주말 나들이라도 나가보면,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벌이 아직 눈에 띈다. 벌과 2년간 동고동락하며 잿빛 감성에 옅게나마 풀빛 감성을 덧칠할 수 있었다. 도시양봉은 그냥 꿀을 얻는 경제활동이 아니라, 도시의 초록빛을 살리고 공동체와 소통하는 사회활동이라는 믿음도 얻었다.
이 글을 읽은 도시 남녀들이 길을 걷다 벌을 만난다면, 무서워하지 말고 반경 5km 내외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누군가가 있으려나 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도시인의 양봉분투기’ 연재를 마칩니다.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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